정말?
처음엔 한 도시를 2주 동안 머물면서 돌아보면 충분히 다 둘러보고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웬걸, 2주가 지나니 보고 먹고 느끼고 싶은 게 더 많아졌다. 이스탄불의 바다 냄새, 사람 가득 찬 버스의 이국적인 냄새, 촉촉한 빵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 케밥에서 나는 양고기 냄새, 차이의 쌉싸름한 냄새까지 조금은 더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정직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이스탄불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하루하루 힘이 들 땐 막연한 한국의 땅과 집을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집은 가기 싫어하는 신기한 녀석이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아니, 나는 "아타투르크 하발르만"이라고 더 많이 불렀다. "Water" 대신에 "Su"를 더 많이 마셨고, "쌀" 대신 "빵과 케밥"을 더 많이 먹었다. "물은 셀프" 보단 "물 한 병에 500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나 "Hello" 보다 "Merhaba"를 더 많이 외쳤다. 그렇게 터키의 언어와 터키의 향기, 문화, 날씨, 음식까지 모든 것이 터키에 익숙해져 있었다.
공항을 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도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알아듣지는 못하는 터키어를 한마디 들으면서 바를 밀고 들어가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커다란 터키 사람들 틈에서 자리를 잽싸게 찾아 앉을 수 있었고, 버스를 돌아다니며 50원짜리 휴지를 1달러에 사달라고 하는 시리아 어린이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다.
두 번째 터키를 다녀갔을 때도 있던 한국인 지상직 직원은 그대로 있었다. 익숙한 마음에 말 한번 걸어보려는 것을 참았다. 학생 혼자 간다고 하니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좋은 좌석과 빠른 수화물 태그까지. 어쩌면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학생에겐 커다란 배려와 행복, 감사함과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출국 심사의 카메라를 향해 미소 한 번을 날려주니 심사관이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다. 몇 번을 해도 떨리는 보안 검사도 끝냈다. 일찍 도착했기에 시간은 여유로웠고, 남은 시간 내내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보기로 했다. 느낌 있게 커피 한 잔 정도는 손에 들고 있고 싶었다.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 스타벅스를 찾아갔다. 주문은 신속하게, 까라멜 마키아토, 그란데 사이즈, Mr.Hoon를 외쳐주면 곧 이름을 부르며 커피가 나온다.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이스탄불에서의 기억과 음식을 마무리했다. 게이트로 가니 수속을 도와주던 아까 그 지상직 직원이 나를 비즈니스 라인으로 불렀다. 그리곤 비즈니스 좌석 사람들과 같이 먼저 비행기에 타게 해준다. 얼떨결에 버스에 먼저 타서 비행기로 향하고 있었다. 그 직원에게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한마디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그렇게 먼저 자리에 앉아서 짐을 정리하고 나서는 바로 앞에 보이는 비즈니스 좌석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비즈니스석에 앉아 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왕 탈 것이라면 일등석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때, 승무원 누나가 말을 건넸다.
혼자 여행하고 가는 거예요?
얼떨결에 대답했다. 대답한 직후의 잠깐의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넋을 놓은 채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나누었나 보다. 나이가 몇 살인지 물어보시곤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고 놀라신다. 그리곤 "중2병은 지나갔겠네요?" 하고 웃으신다. 그렇게 짧은 대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비행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언가 콱 다가왔다. 그 한마디에 울컥하고 말았다. 혼자 여행하고 가냐는 질문 한마디에 이유도 모른 체 울컥하는 마음이 치솟고 말았다.
열여섯이 집에서 8,000Km 떨어진 곳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 장소를 걸어 다니며 상대방이 웃으며 욕을 하는지, 맛있게 먹으라고 하는지도 모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터키어를 들으면서, 빵과 양고기로 만든 케밥을 먹으면서 혼자 지낸 시간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지쳐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 들려온 한마디, 한국어로 말을 걸어준 따뜻한 그 한마디와 웃음이 너무 소중했다.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울컥이란 게 이런 걸까. 행복하면서 울컥할 수도 있구나. 이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많고 다양한 감정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조금씩 멀어지는 이스탄불을 보면서, 구름을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펑펑 울었다.
언젠가 그 감정들을 곱씹어 이해할 수 있길.
#1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