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1-230131 at 광주 31사단
새해
새해를 휴가 중에 맞이한다. 거실에서 새해 타종 행사를 바라본다.
너희도 생각보다 나이가 많더라고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고3 담임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열여덟에 만난 선생님은 열아홉의 입시를 함께 했고 스물의 재수를 지켜보셨으며 스물하나의 새내기와 스물둘의 이등병, 스물셋의 상병까지 보셨다. 그 동안 우리도 선생님의 연애, 결혼, 신혼여행, 아들을 보았다. 선생님의 첫 고3 제자 둘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상병 하나와 사관학교 생도 하나가 되었다. 찜닭을 먹으며 고등학교 시절과 근황 이야기를 넘나들었다. 이미 전역한 친구들부터 전문하사를 하는 중인 친구, 해외로 떠난 친구, 특이한 길을 걷는 친구. 문득 선생님이 한 마디 하신다. "너희도 이제 생각보다 나이가 많더라고." 그렇다. 열아홉의 시절이 이젠 4년 전이니까. 그 때의 나와 지금의 간격을 앞으로 한 칸 가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어쩌면 직장에 다니고 있겠다. 수시와 정시와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제관계에서, 군대 이야기와 자기계발, 생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로. 시간은 변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전역의 해
종교행사를 갔다가 달력을 받아왔다. 생활관 책상에 달력을 올리고, 몇 장을 넘겨 전역일을 적는다. 뒤에는 올해 달력이 필요없는 후임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누구나 지나가고 나도 지나왔던 그 순간의 흐릿해진 경험에, 애써 말을 아낀다.
하고싶은게 너무나 많아서
시간은 많다. 아니 어쩌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사놓은 전공 책만 하더라도 알고리즘, 네트워크, 운영체제 3가지 분야이다. 한 권 한 권이 3학점 혹은 그 이상의 과목임을 생각하면 하나라도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스페인어 책을 사놓은지 몇 개월이다. 아직 한 두 문장 뱉는 것에 그쳐있다. 전역하고 여행가서 꽤나 무난한 대화를 할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이 상태로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밖에 못 뱉을지도 모른다. 휴가 복귀하면서 고등학생 때 사용하던 단어장을 들고왔다. 그 당시에 제대로 외워놓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서, 대학에 돌아가서 혹은 컴퓨터공학에 남으려면 영어가 통해야 한다는 생각에 영어 공부를 챙겨왔다. 책을 많이 읽으려 한다. 인문학은 문과, 이과, 예체능에 상관 없다 생각한다. 경영학과와 컴퓨터공학과와 시각디자인과의 구분이 필요없는 곳이다. 그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생각들이다. 소위 내가 원하는 사람인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군대에는 진중문고라는 것이 있다. 분기마다 몇 권의 책으 선정해 읽으라며 책을 보내준다. 그것과 여러 인문학 혹은 교양 서적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키워나가고 글자로 남기는 것도 찔끔이지만 시작했다. 군에 입대하고 15kg를 감량했다. 아직 10kg 남았다. 근육도 붙여야 하고 살도 더 빼야한다. 전역 다음 날 동남아로 떠나 웃통 벗고 물놀이 하겠다는 다짐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대충 생각해도 해야할 것은 운동, 스페인어, 영어, 전공 공부, 책 읽기로 정리 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군에서 성공적으로 자기계발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과목이다.
더 이상 펜을 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 생각으로 종강 후 빠른 시일 내에 군대에 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머리 쓰지 않고 그저 몸뚱이만 굴려도 되는 곳으로 간다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멈춰있는 것은 그대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뒤쳐지는 기분이다. 18개월만이라도 펜을 놓고 싶다는 생각은 18개월 동안 숨어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되었다. 그 두려움의 뿌리엔 결국 세상에는 나의 근본을 드러내야 한다는 떳떳함의 자세가 있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하니까. 언젠가도 아니다. 입대를 한 순간 정해진 전역일이라는 날에 맞추어 난 다시 군대를 벗어나야 하니까. 그래서 자기계발을 기웃거렸다. 생각보다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만 생각보다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촉박하다. 그래서 전자의 시간에 머리를 굴리고 후자의 시간에 몸을 단련하기로 했다. 열심이던 순간도 많았다. 매일 같이 체단실을 찾아가고, 누구도 하지 않는 뜀걸음을 혼자서라도 뛰어다녔다. 주말이면 휴대폰을 내려놓고 강의를 찾아듣고 알고리즘을 공부했다. 그러나 평가도 시험도 퀴즈도 없이 무형의 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힘듦을 느꼈다. 반 평생을 함깨했던 시험이 평가의 역할 뿐 아니라 동력의 역할도 있음을 깨닫는다. 땔감 없는 증기기관차처럼 서서히 열정은 사라졌다. 당장 내 옆의 사람들처럼 잠 오면 자고 시간 나면 휴대폰하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찜찜한 무언가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본능 깊은 곳에서 그렇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게 아니란걸 자꾸 상기시킨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새해가 되었고 남은 시간이 지난 시간보다 더 적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다짐한다. 훈련병 시절 이 곳에서 지덕체 중 하나는 얻어서 가겠다고 했던 그 각오를. 학생 때부터 늘 주장하던 것이 있다. 작심삼일이 문제라면 삼일에 한 번씩 작심하면 된다고.
세상만상
군대에 오면 온갖 인간 군상을 다 겪게 된다지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줄.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온 것이 대한민국 과반수 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진학률이 70%이 넘는 나라인데, 그럼 열에 일곱 여덟은 그러한 사람들이여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도 그러했다. 딱 그 길을 걷고 있었으니 주위에는 그러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끔 대학을 포기하거나 꿈을 찾겠다며 해외로 떠난 친구도 있었지만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 나의 세상이 군대에 와서 생각보다 많이 무너졌다. 셋에 하나는 고졸이였고, 또 다른 셋에 하나는 이혼 가정이었고, 다섯에 하나는 일을 하며 돈을 벌다 온 직장인이었고, 또 다른 셋에 하나 정도가 내가 생각했던 대학에 다니는 20대였다.
최근 후임들에 대해 말이 많이 나왔다. 같이 말은 몇 번 섞었겠지만, 나는 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행동의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 나는 어쩌다보니 군번이 잘 풀린 사람이다. 위로 몇 명 없고 밑으로 훨씬 많았기에 어지간히 해결되겠거니 고개를 돌렸다. 남 인생 별로 관심도 없고 정도 잘 안가는 성격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소위 '라떼는'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때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의 후임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선임과 후임 모두 경험의 차이다. 선임은 경험 해 본 과거의 시간에 불복하는 후임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후임은 그것이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의 편지에 부조리라는 명목으로 적히자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진상 손님, 소위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에 있을 것만 같지만 들여다보면 이코노미에서 훨씬 많다는 것. 강자는 악하고 약자는 선하다는 착각. 선임은 가해자고 후임은 피해자라는 착각.
시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과 예의와 예절과 눈치에 대한 무지. 이것이 학력과 연결 된다는 것은 아니다. 공고를 나와 회사에서 일을 하다 온 후임은 갈등 해결 능력과 사교성이 좋으며, 스물 여덟 의대생 후임은 한참이나 나이가 적은 후임에게도 머리를 숙일 줄 알며, 들으면 다 아는 대학을 다니는 선임은 이기적인 행동으로 선임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인생사 모든 것은 케바케, 사바사, 일어나면 확률은 1이고 일어나지 않으면 확률은 0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상을 믿는 것은 대다수의 흐름에 올라탔을 때 놓치는 한 두개를 예외처리 하는 것이 한 둘을 위해 대부분을 놓치는 것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훗 날 이 글을 돌아봤을 때 부끄러웠던 생각이 될지, 훌륭한 통찰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생각은 이러하다.
인 줄 알았는데
8월의 동남아는 우기라고 한다. 동남아는 여름에 가는게 아니였다니.
설날
설날에 당직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