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담론

by HOON

230401-230430 at 영광 광주 31사단



육군참모총장

원래 후방에 이렇게 별들이 많이 찾아오나. 육군참모총장이면 국군 안에서도 거의 최상급의 서열일텐데. 대한민국 최후방 사단에 왜 이렇게 높으신 분들이 많이 찾아올까. 아무튼 온단다. 참모총장이 방문하기 며칠 전에는 육군 주임원사가 방문한다나. 아무튼, 높으신 분들을 맞이 할 준비를 한다.


옆 건물 소초 사람들은 페인트칠과 계단 빡빡이질. 우리는 잡초 뽑고 창고 정리하기. 다들 머리 자르고, 손톱 발톱 자르고.


간부님. 암호 장입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일단 다음 주에 하고. 막사 앞에 예초부터 끝내.


알겠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마편에 찔렸다. 병영생활 행동강령. 쳣째, 분대장을 제외한 병 상호간에는 명령 지시 간섭을 금지한다. ... 셋째, 폭언 욕설 인격모독 등 일체의 언어폭력을 금지한다.


난 병영부조리 가해자다.


진지에서 철수하는 마이티 안. 행보관님이 운을 띄운다. 난 중대장님이 일단 너를 급하게 내리라고 해서 온거지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조사를 하던 징계를 하던 내가 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소상히 말했다.


폭언과 욕설을 했다고.


중대장실. 심정이 어떻냐고? X같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올라가라 해서 올라갔고 내려가라 해서 내려왔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신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명령에 복종만 하면 되는 신분. 이는 무책임을 뜻한다. 권한있는 자의 무능이 아닌, 책임이 존재하지 않음의 무책임. 그렇기에 나의 잘못을 깨달았다.


권한없는 자의 행위. 이를 월권이라 부르던가.


이딴게 선진병영이냐며 부르짖고 싶어도 입을 열수록 나에게 불리하기에 목구멍으로 삼킨다.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는 선임에겐 지금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죄송하다 하고, 친했던 후임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폭언 욕설이라며 속을 긁어도 무어라 할 수 없다. 처음 보는 후임들은 건너건너 소문만 들었으니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안봐도 뻔하다.


의미없다 생각했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매년하는 회계감사, 매년하는 국정감사, 매년하는 어쩌구. 일 년에 4번 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매주 검사하는 출석.


검사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입대할 때 다짐했다. 악마와 함께 한다고 해서 스스로도 악마가 되지 말 것. 이 공간의 사람들을 대할 때 이곳이니 그러하겠지, 밖에선 그러지 않을 것이라 늘 말해왔던 스스로이기에 망각했던 사실. 나조차 그렇게 되어버렸다. 하루하루에 젖어버려 그곳에 물 들어 버린. 무언가와 단절된 곳에서 정지된 사고의 흐름은 나를 멍청하게 만들었다.


멈춰있음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는 것이다.



격리의 공간에서

감방에 갇힌 듯한. 진지에서 쫓겨나고,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소설도 교양서도 자기계발서도 아닌, 대학의 인문학 교양 강좌의 교재. 책 제목을 말하면 동문들은 필히 나의 소속을 짐작할 수 있을테다. 인간의 가치를 탐구하는 책을 꺼내들었다. 매일 연등을 신청해 글 하나를 읽고 질문에 답해보았다. 책을 쓴 교수님들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선 골똘히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앞으로는 무슨 생각을 해볼지. 등록금내고 학점 받으려고 수업 들을 때도 이렇게 성실하게 답을 적어보진 않았는데, 이런 경험을 또 다 해본다. 0.38 얇은 볼펜으로 써내려간 자그마한 글씨들이 A4용지를 가득 채운다.



사실과 진실

약자는 강하다. 약자는 피해자고 강자는 가해자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대한민국 군대는 선임은 강자고 후임은 약자다. 군대 참 좋다. 약자의 신분으로 한마디 내뱉으면 법정증거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따위 필요가 없다. 그대로 승리한다. 용의자는 없다. 즉시 피의자가 된다.


군기교육대 갔다 올 행위들을 보다 못한 중대장님이 새로운 인원 한 명을 데리고 진지로 올라왔다. 문제의 행위를 한 인원에게 진지 철수를 준비하라며 짐을 싸라고 했다. 그 인원은 진지 철수라는 말에 한숨을 크게 쉬며 본인이 왜 진지를 철수해야 되냐며 되물었고, 돌연 병영부조리 피해자로써 상담을 요청해 자살호소인이 되어 중대장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중대장님과 차를 타고 다시 진지에 올라오는 길에 그날의 상담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너가 주장하는 병영부조리는 알겠다. 그런데 넌 정말 떳떳하냐. 떳떳하단다. 그 때부터 중대장님이 알고있는 사건들을 딱 하나씩 풀기 시작했단다. 이거말고 더는 나한테 고백할게 없냐. 정말 없단다. 솔직하게 다 말했단다. 다른 사건을 하나 더 말해준다. 이제는 진짜 없단다. 마지막 하나를 더 말했다. 그 때 쯤 되자 자살호소인의 손이 벌벌 떨리면서 '이 새끼 이거 어떻게 다 알고있지?'하는 표정을 지었단다.


그렇게 공소 사실은 진지 일탈 행위 사건에서 병영부조리 가혹행위 사건으로 변경되었다. 일탈 행위 용의자는 피해자가 되었고, 제 3의 인물은 병영부조리 가해자가 되었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길 바랐다. 기도했다. 사실관계파악을 위해 진술서를 쓰라하면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진술서 수십 장에 내 모든 뉴런 세포를 닦달해서 라도 모조리 적어내겠노라. 입으로 혹세무민하지 않고 글자로 증명하겠다. 내가 무죄, 무혐의라는 결과는 생각치 않았다. 나도 징계 받겠다. 근데, 저 선택적 정신의학과 환자의 자살 호소가 얼마나 악독한지 모든 중대원이 볼 수 있게 해달라.


공식적으로 징계위원회가 열리기에는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았다. 그 기간에 우리 중대는 직할대 내에서 부대 이전 작업이 한창이었고, 위원회에 필수적인 행보관님은 교육 일정이 잡혀 3주 가량 자리를 비우게 될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진술서로 말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면서 무엇하나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 처지에 후임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을 고칠 방법도 없어져갔다.


그러면서 비공식적인 사실조사가 이루어졌다. 철수하는 차 안에서 행보관님과 대화하고, 중대장님도 면담을 통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알려주었다. 가끔은 행정반에 혼자 불려가 행보관님께 앞으로 어떻게 할지, 해야할지 듣기도 했다. 이렇게 사건이 터지고나니 간부들이 드디어 회의를 했나보다. 진지 간부로부터 여러 사건들의 전말을 모두 들은 듯 했다.


없는 경우를 경험했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앞뒤 전후 상황을 들은 간부들은 어느정도 결론을 내린 듯했다. 행보관님은 "할 말만 했구만 뭐"라고 하셨고, 중대장님은 "이 일로 절대 기 죽고 다니지마라"라고 하셨고, 반장님은 행보관님 앞에서 내 뒷통수를 간략히 튕기며 "이거이거 그냥 징계 때려버려"라고 하셨다. 그래도 군생활 어지간히 못하진 않았나보다.


내가 진지를 떠나고 2주가 되지 않아 자살호소인은 새로운 사건을 일으켰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인원이 진심으로 나를 맥이려 했으면 다음 진지 교대까지는 적당히 사리면서 보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견디지 못할만큼 근질거렸나보다. 중대장은 해당 인원에 대한 진지 철수를 다시 한 번 명했다. 그리곤 나를 불러, 미안하지만 너와 그 인원은 붙어 있을 수가 없기에 진지에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위치는 다시 진지가 되었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결국 주둔지로 내려간 자살호소인은 말년 아닌 말년이 되어 어떠한 터치도 받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유독 근무 시간만 되면 무기력증을 동반한 성인 ADHD가 발현되어 모든 것에서 열외되었다고 한다.


나는 철수하는 마이티 안에서 행보관님께 죄송하다 그랬다. 행보관님은 왜 나한테 죄송하냐 그랬고, 부대 이전에 곧 있을 교육에 바쁘신거 아는데 일을 또 만들어서 죄송하다 그랬다. 나는 중대장실에서 중대장님께 죄송하다 그랬다. 중대장님은 죄송할게 없다 그랬다. 그래서 죄송하다 그랬다. 누구는 말년이 되고, 누구는 죄인이 되었다. 논란을 일으키고 사건을 일으켰다는 도의적 자책감에 고개 숙인 시간들이 참 서운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보니, 저렇게 살기는 싫더라. 나는 재수 할 때부터 나름의 신조, 기개가 생겼다. 아쉬워하되 후회하지 말자. 그렇게 지나간 것에 후회하지 않게 살자. 이번 사건도 그렇다. 그 친구에게 내뱉은 말들. 잘못은 했으나 당당하다. 뻔뻔하게 고개 들고 다니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빼는 삶이 아니라, 그건 내가 한 것이 맞다고 당당하게 시인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



책임회피론

한 간부는 말했다.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본인들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나와 분대장은 운용관, 반장, 중대장 모두에게 차례차례 말했다. 그런데 각각은 서로에게 전해들은 바가 없단다. 말할 때마다 늘 처음 듣는 일이란다. 그럴거면 매일 아침 회의는 왜 하고 중대 간부 카톡방은 대체 왜 만들어놓은걸까. 정말 웃긴 건 그런 일이 있으면 지휘보고체계 건너뛰어서라도 본인에게 직접 말해야 했다는 간부는 중대장에게 병사들이 지휘체계를 거쳐 보고를 하지 않으니 나 더 이상 일 못하겠다는 불만을 내비친 사람이다. 권력은 취하고 싶으나 책임은 지기 싫나보다. 이 사건에서 본인은 들은 바도 없고 아는 바가 없으니 책임이 없다 했다. 자기를 건너뛰고 병사들의 의견이 전달되는 것은 무시당하는 것 같으나, 사건사고는 자기를 건너뛰기를 바라는가 보다. 진심을 담아 다섯글자를 전한다. 역겹다.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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