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인생사 새옹지마

by HOON

230501-230531 at 영광 31사단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날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와 어버이와 스승에게 모두 인사를 할 수 있는 주간이 있다. 내 주변에 어린이는 없으니 넘겼는데, 어버이와 스승은 존재하니 간만에 연락을 드렸다. 부모님께는 꽃 한 다발을 보냈다. 고3 담임 선생님과 옛 과외 선생님



인간이 싫다 그냥



더 싫어

인간이 혐오스럽다.



수동적 허무주의

의욕도 의지도 없다. 이 공동체에 더 이상 헌신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공개적인 글자로 적어낼 수 없는 여러 일들로 수모와 수치를 겪으며 있는 정 없는 정 모두 없어졌다. 먼저 일어나 움직이던 순간에 계속 누워있고, 먼저 나섰던 순간에 의자에 앉아있고, 먼저 뛰어가던 순간에 뒷짐지고 천천히 걸어간다. 그래도, 잘 굴러간다. 나 하나 없어도 잘 굴러가는게 이 조직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시간은 흐르기에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태도가 나의 삶을 잠식해버렸다. 눈을 뜨고 깨어야 할 시간에 눈을 감는다. 몸을 움직여야 하는 찌뿌둥함에 고개를 뒤로 젖힌다.


아아. 빨리 이곳을 나가야지.



진심과 곡해 그 사이

반장님이 진지로 돌아오셨다. 평일이 대충 다 지났을 쯤. 어쩌다 마주보고 점심을 먹게 되었다. 반장님이 툭 던지신다.

@@아. 넌 진지가 낫냐 주둔지가 낫냐?


"어디든 크게 딱히 상관없습니다. 뭐 장단점이야 다 있는거고, 전 환경이 주어지면 거기에 적응하려하기에 스트레스는 크게 받지 않는 성격이라 뭐든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음 그래. 장단점이야 뭐 다 있는거지."


성격 조금 죽이고 지내.


"너가 왜 화 내는지도 알고. 뭐 좀 잘 해보려다가 그렇게까지 되버린 것도 아는데. 안되는 사람은 안되는거야. 한 두 번 해보고, 안되는 사람이면 그냥 너와 나는 다르다, 하고 그냥 둬. 군 생활도 해보고, 인생도 살아보니까. 그게 맞더라. ..."


"그렇습니다."


... 제가 꺾으려했던게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게 맞다. 인간 절대 고쳐서 쓰지 못한다고 말하고, 각자 인생 각자 사는거라며 줄곧 말해왔던 내가 사람 하나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에 왜 열불을 올렸을까.


사람은 고쳐쓰지 못한다. 이 말은 나에게 지금까지는 폐급 인생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그걸 어떻게 고치겠냐는 비아냥에 가까웠다. 이제는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 사람을 고쳐보겠다는 뜻은, 한 사람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겠다는 오만방자함이다. 정상적인 관계에서 타인을 주무른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비이성적 관계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라면 타인을 통제하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오만한 것이다.


"@@이 전역이 언제지?"


"8월입니다."


"나 그때까지 여기 있으니까, 여기서 쉬면서 있다가 해라."


"알겠습니다."


밥을 먹고 생활관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몇 마디의 대화는 생략되었고 모든 대화가 올곧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화를 곱씹었다. 오랜만에 한 진짜 어른과의 대화. 사람은 이렇게 다루는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던 대화.


그래서,


이 대화가 마편 찔린 가해자를 피해자와 떨어뜨려 놓으려 진지 잔류를 유도하기 위해 구슬리는 말이었는지, 정말 대화 그대로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리곤, 내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못 믿었나 생각이 들었다. 못 믿을 사람들과 매일매일을 붙어 지내다보니, 관점이 그렇게 박혀버린듯이.


그냥 믿기로 했다. 경험에 비추어. 나에게 그런 의도로 말할 간부가, 반장님이, 어른이 아니다. 설령 정말 그런 의도로 말을 꺼냈을지라도, 바보처럼 믿고 지내련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좋은 것이니까.



침묵의 봄

이렇게 묻어두고 가려나보다.

전출을 보내겠다는 행보관님과

현부심을 넣으려 법무참모와 몇 번의 회의를 했다는 중대장님.

쟤는 그냥 냅두고.

나도 그냥 냅두고.


대충 느낌은 온다. 소란스럽게 한 명을 처벌하려면 나도 같이 묶인다. 피할 수 없다. 쟤를 냅두고 싶어서 그 덕에 내가 피해갈 수 있는게 아닌, 나를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어서 내치고 싶은 쟤도 그냥 떠안고 살자는 결정.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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