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붉은 장미

by HOON

230601-230630 at 영광 31사단



눈을 떴다

휴가 중에 스마일라식을 했다. 라섹 할 생각으로 병원을 갔는데 이런저런 설명을 듣다보니 스마일라식을 받게 되었다. 안내서에 시력교정술은 치료가 아닌 선택이라고 했는데 아니다. 15년 동안 안경을 쓴 나에게 근시는 질병이였고 시력교정술은 치료다.


피사체가, 사물이 이렇게 깨끗해도 되는걸까. 너희들은 원래 그렇게 깔끔하고 선명한 존재였던 것일까. 나뭇잎 한장한장이 이렇게 개성있는 존재였구나.



어머니의 고백

어머니 출근 길에 지하철역에 좀 떨궈달라고 부탁드렸다. 걸어서 10분 정도. 차를 타도 신호 걸리면 10분 걸리는 또이또이한 거리. 굳이굳이 차를 탄 것이다. 당장 기억에 나는 마지막 탑승은 고3 시절 학원이나 학교를 왔다갔다 하면서 탔던 기억이었다. 휴가를 나오거나 크게 움직일 때는 주로 아버지의 차를 탔으니, 어머니의 차가 낯설기도 할 만한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다, 좌회전을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이 어렸을 때, 엄마가 말이 너무 심했었던 것 같아. 돌이켜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게 우울증이고 화병이고 엄마가 아팠던건데. 그걸 너희한테 쏟아냈던 것 같아. 혹시나 그 때의 경험이 아팠고 아직 아파하고 있다면 엄마가 미안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이 말을, 사과를 듣는데 15년이 걸렸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말을 돌렸다. 뭐 내 고등학생때는 그러지 않지 않았나. 그 때는 아니였지. 너 초등학교 다닐 때, 사는게 참 힘들어서.


근데 그 자리에서 흔쾌히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혹은 이제는 괜찮다고 그 사과를 용감히 받아줄 수가 없었다. 용기가 곁들어진 사과의 말에 가뿐히 용서로 응답하는 것은 쉽지않다. 오히려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만 나오는게 아닐까 싶다. 쉽지 않았음은 안다. 부모가 자식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말하는게 어디 쉬울까. 그럼에도 그 순간 난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패륜이라 욕할지도

너는 얼마나 잘난 자식이냐며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로 난 그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를 소재로 한 글에서 이런 문장을 썼었다.

어릴 적 저의 허한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모르던 어릴 때, 대부분 시간이 혼자였던 기억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부터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이와 비슷한 마음이다. 나는 아직 어릴 적의 마음은 허하고, 허한 마음으로 혼자의 시간을 보내던 기억도 잊히지 않았다. 마찬가지다. 여전히 난 그 때의 일들을 잊지 않고,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 어릴 적 부모를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내가 부모에게 박은 대못도 한 둘이 아니지 않겠는가. 이해한다. 어렴풋이나마, 가까스로, 부모를 이해하고 저 문장을 쓸 수 있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해 백 번 천 번 해도, 흉터는 남는다. 그 흉터를 이해가 아닌 용서하는 것은 또 하나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용서는 더 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는데.

아직 그만큼 강하지 못하나 보다.


부모를 용서할 수 없다는 이런 부도덕한, 비인륜적인 글을 당당히 써내려가는 한 인간의 행태, 자식의 파렴치에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머니도 분명 알고 계실게다.

본인이 키워낸 아들내미의 진짜 모습은

오히려 이것이 맞다고.

이게 바로 본인이 길러낸 아들다운 모습이라고.


아직은 아니다.


상처를 상처로 갚는 사람이 아닌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언젠가,

언젠가.



나의 해방일지

잔잔하니. 자극적이지 않은 영상.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라 그런지. 더글로리와 카지노를 보고 난 후에 시작한 영상이라 그런 건지. 틀어놓고 무던하게 쳐다보며 대사에 귀를 기울인다.


나를? 너를, 추앙해요.



무표정한 행복

아이유가 그랬다. 왁자지껄한 행복도 있지만, 무표정한 행복도 있다고. 무슨 일이 없으면 행복한 것 아니냐고. 우리는 인스타그램의 행복에 젖어있다. 터치 한 번에 넘어갈 스토리를 위해 행복을 바치고있다. 물론 나도 스토리 하나 게시물 하나를 올리기 위해 수없이 셔터를 누르고 태그를 걸어대었다.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 뭐 그게 나쁜가. 예쁜 사진, 멋진 스토리 하나 올리겠다고 굳이굳이 꾸며서 예쁜 곳 찾아가고 맛있는거 먹고. 뽐내든 그러지 않던, 문장의 뒷부분이 우리가 결국 살아가는 이유 아닌가. 열심히 왜 살아. 맛있는거 먹고 예쁜거 보려고 노력하며 사는거지.


왜 무표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냐면. 지금의 일상이 딱 그렇거든. 어제가 오늘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이 곳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것이 가장 바라는 상태라서. 행복은 막 특별하고 새로워야 할 것 같은데, 여기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이 그리워지는 곳이거든. 그리고 그 상태가 너무나 잘 유지되고 있어서. 가끔 잊곤하지. 무던한 일상이 지겹다고도 가끔 느끼고.


50여일 쯤 남았나. 무표정한 행복에 자꾸만 의심이 가는건 군대의 삶은 결국 끝이나고 소위 말하는 사회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 때문이겠지. 근데 사회 나가면 또 거기 잘 맞춰서 적응하고 잘 살아갈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말장



비 온다

비가 온다.



사기꾼이 너무 많아

뭔 말인지 알죠



밥 먹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아 노을 진짜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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