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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Mar 03. 2024

보이지 않는 길

  도시가 생기려면 먼저 길이 그어져야 한다. 건물 들어서고 길이 놓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만큼 도시 발전에 있어 길은 중요하다. 길 따라 사람이 모이고 일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선거철만 되면 내가 길을 내겠노라 큰소리치는 정치인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은 생기기도 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길, 인간관계다. 그 길 없이 우리는 상대 생각과 마음을 알 길이 없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길을 만나게 된다. 들어설 때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길이 있는가 하면 한참 고심한 돌아서는 길도 있다.


  관계라고 하는 길은 우리에게 숙명과도 같다. 세상 빛을 보자마자 맨 처음 벌어지는 일이 관계를 맺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그물에 연결된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는다. 배려나 관심일 수도 있고 돈이나 음식처럼 생활에 필요한 것일 때도 있다.


  세상길들이 그렇듯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길도 관리가 필요하다. 한꺼번에 많은 게 몰려 부담되면 상대가 알아채도록 신호를 보내야 한다. 반대로 왕래가 뜸해져 잡풀만 무성하거나 돌부리가 차이면 손을 봐줘야 한다. 그러지 못해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관계의 길을 관리하려면 볼 수 있어야 한다. 볼 수 없는 건 관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 놓인 길은 대개 곧고 평탄하다. 서로 엇나가는 일 없이 잘 들어맞는다. 사랑에 빠진 남녀나 사교모임이 그렇다. 자기를 주장하거나 요구하기보다는 상대에 귀 기울이고 맞춰준다. 그러다 보니 마치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댄서처럼 액션과 리액션이 들어맞는다. 조화의 길이다.


  이 길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지향할 길은 아니다. 자연스럽지 않다. 오래갈 수 없고 오래가도 문제다.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힘이 들어간다. 곧고 빠르지만 고속도로 풍경처럼 단조롭다. 관계 초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좀 더 편안해질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왕래가 잦아지면서 길의 풍경도 달라진다. 마음과 마음이 부딪쳐 움푹 파이기도 한다. 서로 생각이 달라 틀어지기도 한다. 감정의 홍수로 진창이 지고 칼바람에 얼어붙기도 한다. 그렇게 얼어붙다 녹다를 반복하면서 길은 다져진다. 평화의 길이다.


  이 길은 조화의 길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편안하다. 세월의 손을 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잦은 발길에 단단히 다져져 있다. 굳이 단장할 필요가 없어 힘이 들지 않는다. 불편한 구간을 만나도 억지로 바꾸기보다는 적응한다. 그렇게 익숙해지면 왕래가 잦아져 얻는 것도 많아진다.


  피해야 할 길도 있다. 서로의 요구와 주장이 날카롭게 부딪치며 깊이 파인다. 물러설 줄도 모른다. 제때 매우지 않아 웅덩이가 생긴다. 들어서기 꺼려지고 긴장된다. 자연스레 왕래가 줄면서 잡목이 무성하다. 그에 대해 서로 비난하며 상대 탓을 한다. 상대가 변하기를 요구하다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불화의 길이다.


  관계의 길에도 생애가 있다. 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끊겼다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잦은 발길에 다져진 길만큼 든든하 것도 없다. 하나 오래 간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평화롭게 오래가는 게 중요하다. 무조건 배려하고 희생해서 될 일은 아니다. 균형이 주요하다. 상대가 와주면 나도 한 번 가주어야 한다. 걷다 관심 돌릴 나무나 만나서 반가운 벤치가 있어도 좋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나를 충분히 표현하고 상대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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