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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랑
Un Amore Cosi Grande

칸쵸네가 들려준 관계 회복의 비밀

by 장동혁

최고의 것을 우리는 흔히 ‘천상의’라고 부른다. 천상의 과일로는 키위를 꼽을 수 있다. 맛이 풍부하고 영양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마리아 칼라스를 천상의 목소리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에서 열리는 천상의 열매는 무엇일까?


사랑.


이견이 없을 정도로, 사랑은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관계다. 그중에서도 남녀 간 사랑은 맛과 향에서 최고다. 썸이 시작될 때의 설렘, 상대 마음이 보이지 않을 때의 답답함,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때의 환희. 출근하는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연민과 사랑이 떠나고 난 뒤의 애틋함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 선가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을 거다.


사랑은 단순하 교감을 넘어 사람을 변화시킨다. 평소는 하지 않던 아침 운동을 시작하는가 하면, 옷장을 뒤집어가며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한다. 가수 윤종신은 "할 때도 안된 샤워를 하며 그 멜로디를 따라" 한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개인의 성향과 문화에 따라 사랑을 표현하고 경험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중에도 사랑을 이성 간에 벌어지는 교감을 넘어 일종의 신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있다. 이탈리아 남자들이다.


길을 걷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휘파람 소리에는 황홀감을 느끼지만, 뉴욕 노동자의 휘파람 소리에는 모멸감을 느낀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길을 걷다 보면 ‘세뇨리타’와 함께 여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아름다움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거나 표현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죄악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한 농간이 아니라 지식과 논리, 감각을 총동원해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그래서일까? 이탈리아 남자가 부르는 사랑 노래마저 차원이 다르다.


대표적인 예가 <위대한 사랑, Un Amore Cosi Grande>이라는 칸초네다.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나는 1970년대 마리오 델 모나코의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단순히 사랑을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연출한다.

노래는 한 남자가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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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o sul viso il tuo respiro
“내 얼굴 위로 스치듯 지나가는 너의 숨결을 느끼고 있어”


첫사랑의 설렘과 떨림이다. 델 모나코의 황금빛 트럼펫 같은 음색은 지중해 위로 솟은 태양처럼 맑고 청량하다.


La sera accende già, la notte impazzirò
“벌써 어둠이 찾아오고, 밤은 미쳐가고 있어”


서로 눈이 마주치고 이어서 마음까지 통하는 순간을 “밤이 미쳐가고 있다”라고 표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노래는 사랑의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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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silenzio breve e poi la bocca tua si accende un’altra volta
“몸과 영혼이 타오르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입술이 다시 불타올라"

이 소절을 들으면, 뜨겁게 불타오르던 시절을 지나 차가운 겨울을 겪은 뒤 다시 봄을 맞이한 관계의 정원이 떠오른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하숙집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놀랍게도 서클 친구 '신'이었다. 나는 그것이 외계에서 온 신호라도 되는 듯 읽고 또 읽었다. 그 친구에게서 편지가 올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임 때마다 레크레이션을 도맡아 해서 선배들 사랑을 듬뿍 받았다. 뒤에서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남사스럽던 나에게, 그녀는 그저 별세계 인간이었다. 아카시아 껌종이로 장식한 편지에는 외롭다고, 주목받을수록 외롭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세상이 다르게 보였고, 나 자신조차 낯 설만큼 변했다.

나도 어서 "나"라는 정원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서툰 정원사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언젠가부터 느려지는 보폭에 답답해진 나는 손이 아닌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강에 발을 담갔다.


'거리두기'의 강이다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운함이 쌓였다. 처음에는 이해하려 했지만, 점차 불만이 늘었다. 일부로 연락을 받지 않기도 했다. 말이 줄어들었고 관계 온도도 서서히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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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마음이 멀어졌고, 서로에게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상대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기만을 바랐다.


그러다가 나는 "강압하기 강"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는 그녀에게 서운함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을 전하는 표현이 주장으로,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는 요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상대를 붙잡기는커녕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위대한 사랑 속> 주인공은 노련한 뱃사공처럼 노를 저어 절연의 강이 아닌 회복의 강으로 나아간다. 그는 갈등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전한다. 그렇게 오해가 풀리고, 다시 마음이 연결된다. 서로가 여전히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렇게 얼어붙었던 관계 정원에 다시 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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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amore cosi grande Un amore cosi
“그렇게 위대한 사랑, 사랑은 그렇게 위대해”



노랫말처럼 사랑은 위대하다. 우리를 성장하게 하기도 하고, 한 번도 서보지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위대함을 어떻게 지켜내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게 얼어붙는 겨울이 찾아올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다시 봄의 정원으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 첫걸음은 회피도 강압도 아닌, 상대를 향한 존중과 이해를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을 지킨다는 것은, 상대가 손 내밀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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