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째서 결핍을 향하는가

사랑이란 행위의 모순과 부조리함

by 장동혁

우리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들이 있다.


여행이나, 정원 가꾸기처럼 내 필요를 채우는 활동이 있는가 하면,

봉사나 신앙생활처럼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도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은 가장 오래되고 단단하며,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는 행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사랑은 아름다운 화원에서 피어나지만,

때론 그 곳이 불모지일 때도 있다.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는 그런 사랑이 지닌 모순과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빌 언덕 하나 없이 자라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남자, 영석.

가정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난 아버지 덕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겉으로는 단정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얕은 형배.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흔들리는 선희.


세 사람은 각자의 결핍을 채우려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그 삶은 시차를 두고 교차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가장 닫혀 있고 불안정한 영석을 향해 흐른다.

이처럼 사랑은 이성의 질서를 초월해, 결핍과 상처의 자리에 머무르려는 힘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자격을 재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때로는 미성숙하고 상처 많은 이 안에 자리 잡는다.

사랑은 논리보다 감각에, 판단보다 수용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선희는 사회에 적응하며 다듬어진 형배가 아닌,

사랑에 눈뜨기 위해 애를 쓰는 영석에게로 돌아간다.


숨겨진 우월감으로 영석을 가르치려 하는 형배에게,

선희는 말한다.


"나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


마지막 장면에서, 영석의 넥타이를 매만지는 선희의 손길은,

마치 그 모든 혼란과 모순을 끌어안은 사랑의 날갯짓처럼 보인다.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그저 머무는 것이며,

변화가 아니라 수용이다.

사랑은 자기 결핍에서 시작되어 누군가의 결핍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들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형배는,

어린 시절 가정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마지막을 돌보기 위해,

생업까지 접은 어머니를 보며 사랑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사랑이란, 완벽한 이를 향한 감탄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애통해하는 이를 향한 고요한 움직이라는 것을.




그런 점에서 인간의 사랑은 때로 신의 사랑을 닮아 있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존재가 결핍 많고 불완전한 인간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이야기다.

배반과 고통을 감수해 가며 끝내 포기하지 않는 구원의 손길


그것이 사랑의 원형이자 본질이다.

우리의 사랑 역시 그 모순과 부조리함을 닮아 있다.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는 그 사랑에 관한 한 편의 깊은 묵상이다.

동시에 의미와 허무 사이에서 길을 묻는 우리에게 조용히 되묻는다.


"당신은 결핍 위에 내려앉아, 그 자리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가?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기꺼이 머물 마음이 있는가?"




삶의 의미가 성취나 환호 속에서만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쉽게 흩어지지 않는 밀도 높은 의미는,

상처와 상처가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만나,

서로를 감싸고, 그 안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그 기적 같은 순간에 깃들곤 한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내 마음을 묵직하게 움직인 것은

화려한 무대도, 세계적인 명소도 아니었다.

퇴근길 아버지의 처진 어깨,

바나나 두 송이를 앞에 두고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라오스 소녀의 얼굴이었다.


사랑은 때로 그렇게, 예기치 않는 순간에 내 바람을 비켜가며 피어난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완전을 기하는 마음으로 결함을 연민하는 향기"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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