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

실수 쓸만한 동료 만들기

by 장동혁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에 마음 조린 경험이 있을 거다. 회의 자료를 올려놓자마자 오탈자 발견, 회의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 엉뚱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때. 심장이 내려앉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그 순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차가운 시선이나 날카로운 비난까지 더해진다면? 스스로를 벌하고 있는데, 거기에 또 다른 채찍이 가해지는 고통일 것이다.

우리는 왜 실수를 이토록 가혹하게 다룰까? 마치 ‘실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러한 태도가 과연 우리 자신과 소중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이중처벌’이라는 뜻밖의 가르침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하던 어느 지인 이야기다. 어느 날, 현지인 운전기사가 약속 시간보다 5분 늦게 도착했다. 그는 한국에서 그랬듯 “시간 약속을 어기면 어떡합니까!” 하고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운전기사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왜 화를 내세요? 마음이 무겁고 미안한데, 화까지 내시면 이중처벌이잖아요.”

그 말에 지인은 당황했다. ‘내가 잘못한 건가? 실수한 사람이 왜 이렇게 당당하지?’ 하지만 그 말을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충분히 자책하고 있는데, 비난까지 얹는 건 가혹한 일일지도 몰라.

라오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약속에 늦은 사람이 오히려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작은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낯설지만 따뜻한 풍경이다.


실수를 관계의 예술로 바꾸는 지혜

이런 태도는 단순히 ‘덮고 넘어가자’란 의미를 넘어선다. 이미 일어난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넘어설지를 둘러싼 문화적 태도이자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실수를 ‘기능 오류’나 ‘체면 손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에 반해 그들은 ‘관계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더 큰 틀에서 실수를 바라본다. 자칫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고, 관계의 균열을 최소화하려는 일종의 인간관계 기술인 셈이다.

물론 모든 실수가 같은 무게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무책임에서 비롯된 실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뜻하지 않게 벌어진 일들도 많다. 이러한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하고 이해할 줄 아는 감각, 바로 그것이 인간관계를 훨씬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다.


나 자신에게 건네는 ‘괜찮아’의 용기

실수와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피해 여부를 살피는 일이다. 실제적인 피해가 생겼다면,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태도가 당연하다. 그러나 큰 피해 없이 지나간 일이라면, 과도한 자책보다 자신을 살피는 용기가 필요하다.

체면이나 평판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실수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빙판길에서 넘어진 순간, 주변의 시선을 먼저 살피는 대신 자신의 몸이 괜찮은지 확인해야 하듯, 실수의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이 우선이다.

실수를 무조건 ‘피해야 할 장애물’로만 보지 말자. 때로는 그것이 사람 사이의 뜻밖의 따뜻함을 만들어내고, 굳게 닫힌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며, 나를 성장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관계를 지키는 주문

앞으로 실수를 마주쳤을 때,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괜찮아, 괜찮아.”

이 한마디는 실수를 포용하고,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더 깊고 따뜻한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시작의 주문이다. 이 주문이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그리고 인간을 더 온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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