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메타인지

by 장동혁

따르릉.’

알람 소리에 눈뜨는 순간부터 정보의 공습이 시작된다. 밤새 쌓인 메시지, 스마트폰 알림, 엘리베이터 광고 영상, 도로 표지판과 지하철 안내 방송까지. 모든 것이 말을 걸어온다.

현대인은 하루 평균 34GB의 정보를 소비한다고 한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어려운 양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정보는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우리가 안다고 믿는 대부분은 단기 기억에 머물다 금세 사라진다. 반복과 응용을 거쳐야만,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진짜 지식’이 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연락처 목록엔 수백 명이 있고, SNS 팔로워 수도 제법 된다. 전 세계와 연결된 것 같지만, 정작 나는 외롭다. 마실수록 갈증을 더하는 바닷물처럼, 접속이 많을수록 공허함은 짙어진다.

정말 힘들 때, 내 말을 깊이 들어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지인, 친구, 동료라 부르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관계의 메타인지’다.


자막을 켜는 사람들

심리학자 존 플라벨은 메타인지를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이라 정의했다. 진짜 앎은 그 시작은 좀 떨어져서 넓게 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개념은 인간관계에도 확장된다. 많이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감각이 먼저다. 이것이 관계의 메타인지다.

‘의미를 주고받는 관계’를 분별하려면 삶의 자막을 켜는 시선이 필요하다. 자막 없이도 영상을 볼 수는 있지만, 감독이 숨겨둔 진짜 의미는 놓치기 쉽다. 특히 전개가 빠르고 구조가 복잡한 요즘 작품일수록 더 그렇다.

단순한 번역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요즘 영상들처럼 대사의 맥락, 감정의 뉘앙스, 핵심 메시지를 다양한 도구를 통해 강조하는 일종의 안내서를 의미한다.

관계도 그렇다. 스치듯 지나가는 말이나 행동만 보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말의 의도, 감정의 흐름, 행동에 숨겨진 정보를 읽어내야 한다. 때로는 되감기 해서 이전 장면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상대가 바라는 건 무엇일까?’

‘내가 놓친 것은 없는가?’

‘어느 부분에 좀 더 주목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을 떠올릴 줄 아는 감각이, 관계에서 자막을 켜는 능력이다.


다시 봐야 보이는 것들

명작은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 처음엔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 어느 날은 뭉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활발하게 인연을 맺는 것도 좋지만, 오랜 시간 삶의 궤적을 함께하며 깊이 바라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면이 드러나고, 그 사람만의 고유한 빛이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관계는 이해의 반복 속에서 깊어지고, 감정의 재생 속에서 단단해진다.

정보가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연결은 쉬워졌지만 정작 마음이 닿는 관계는 찾기 어려운 시대다. 그럴수록 중요한 건, 자막을 켜듯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는 시선, 표면 너머를 보려는 작은 노력, 그리고 관계를 공들여 바라보는 태도다.

어쩌면 이 조용한 감각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대 속에서 끝내 사람을 지켜주는 가장 따뜻한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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