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형 인간과 터미네이터형 인간

인간은 세계를 이야기로 이야기 한다

by 장동혁

* 2065년 뉴욕

서기 2065년 뉴욕, 기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간군 사령관 코난을 제거하기 위해 슈퍼 솔저 터미네이터 T-9이 미래에서 찾아온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T-9에게 쫓기던 코난은 막다른 골목에서 T-9과 마주치게 되는데.


<스캔!>

- 키 186
- 체중 78
- 체지방 3.2%
- 그레이 헤어, 푸른색 눈 아래 3cm 점 확인, 홍채 패턴 확인
- 목표물과의 일치율 98.94%

0.02초 만에 스캔이 완료되고, 목표와의 일치율 98% 이상에서 작동되도록 세팅된 살상 기능이 작동한다.

<사살!>


코난의 가슴을 향해 푸른 광선이 발사되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그렇게 사라진다. 그 사이 미래 전사 코난이 할 수 있었던 건, "음... 악!"


영화 <터미네이터> 패러디다.

표정 변화 없이 레이저를 발사하는 로봇의 눈이 떠오른다.


이처럼 기계는 '숫자'로 세계를 이해한다.

오류만 없다면 어떤 모델이 투입돼도 결과는 같다. 동일한 부품과 회로에서는 동일한 결과가 나올 뿐이다. 아무리 회로를 고도화해도 거기서 마음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같은 임무에 인간이 투입된다면 어떨까.

그것도 깊어가는 가을, 외로움을 부쩍 타는 요원이.


10미터 앞에서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남자가 나를 응시한다... -.-
서류서 보던 것보다 몸짱이다@@. 헝클어진 잿빛 머리칼이 한쪽 눈을 살짝 가렸다. 폐허로 변해버린 거리가 오히려 그를 로맨틱하게 만든다. 체념한 듯 벽에 기대 허탈한 미소를 짓는 모습까지 완벽하다.ㅠㅠ
그때 남자가 한마디 던진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어이 거기! 담배 있으면 한 대만 주쇼.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는 필 수 있잖아?


목소리마저 중저음이다.

순간 불편해진 호흡에 총구가 흔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안주머니로 손이 들어간다.




싱거운 이야기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닳고 닳은 베테랑이라면 순식간에 처리하고 돌아서겠지만, 이제 막 훈련을 마치고 나온 신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순간적으로나마 딴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 아니 그 반대인가?

거기다가 요원이 내향적 감각형이라면 불현듯 폐허가 된 세계에 둘만 존재하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아니면 그동안 기다려왔던 운명적 만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처럼 기계와 달리 인간은 이야기로 세계를 이해한다.


상황에 대한 판단과 감정을 토대로 줄거리를 만들고, 상대방 의도에 대한 추측과 과장, 비약까지 더해지면 멋진 이야기 한편이 탄생한다. 게다가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낸다. 눈에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심지어 영원히 볼 수 없는 세계까지도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거기서 신화가 만들어지고 종교가 나왔다. 천국과 지옥, 이생과 전생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모든 종교적 진리가 허구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로 이해하고 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상황에서 사람 숫자만큼 이야기가 나온다.

여행을 떠나다 교통사고로 길이 막히면, 누군가는 국내 면허제도의 허술함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예배 빼먹고 여행 떠난 것에 대한 신의 개입을 이야기한다.


갈등에 빠진 당사자들 역시 저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이야기를 들고 온다. 게다가 그걸 사실로 믿고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그걸 바로잡으려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냐는 불평만 듣게 된다. “아! 그렇군요. 당신 말을 듣고 보니 내 생각이 틀렸네요!’라며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갈등을 조정한다는 건, 갈등 당사자가 들고온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지만 흥분한 나머지 오류에 빠진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도록 돕는 일이다. 이런저런 질문을 통해서.




남편이 허구헌날 취해서 들어온다고 열변을 토하는 아내에게 묻는다.

“맨날 취해서 들어온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지난주에는 몇 번이나 그런 거죠?” 순간 아내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러니까 그게 음... 두세 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때 반격의 기회를 포착한 남편이 끼어든다.

“이 사람이!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지난주는 목요일에만 소주 두병과 라가블린 16년을 글랜캐런 잔에 딱 세잔밖에 안 마셨는데. 아차! 막잔은 1/3 남겼지”


일주일에 한두 번이 마신 것이 아내의 이야기를 통해 맨날로 둔갑한 것이다. 아니 아내는 그렇게 느낀거다. 이 경우 “이 웬수덩어리야, 그게 자랑이냐? 그게 그거지 뭐!”라고 악쓰지 않으면 행이다. 아내는 팩트가 중요하지 않다. 남편으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속 썩고 있는지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




이 세상에는 '터미네이터형 인간'과 급전이 필요한 '극작가형' 인간이 있다.


이 조합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건 도박에 가깝다. 한 사람의 입에선 늘 과장과 비약으로 부풀려진 드라마가 나올 것이고, 그때마다 상대는 “무슨 소리!”라고 하는 빨간 펜으로 팩트 체크를 할 것이다. 늘 비상이다.


세상이 극작가형 인간으로만 가득하다면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것이다. 반면에 사실 확인에 여념 없는 터미네이터들로만 가득한 세상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신은 이 둘을 반반씩 섞어 놓았다.


태초, 뱀의 유혹이 있었던 그날, 극작가형 인간이 열매에 손을 데려할 때 터미네이터 형 인간이 끼어들어 따지고 들었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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