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의 씁쓸한 동상이몽

직접 대립의 곤란함 건너기

by 장동혁


* 1828년 조선


같은 자리에 누워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경우를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같은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각기 딴생각을 품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서로 다른 꿈을 꾸는 건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같이 잔다고 꿈까지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상대도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을 거란 허망한 꿈을 꾸는 데 있다. 꿈에서 깨어 상대가 나와 다른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문제가 된다. 그리고 왜 같은 꿈이 아니었느냐며 따지고 들 때 문제는 갈등이 된다.


여기 동고동락하며 길고도 아름다운 꿈을 꾸다가 서로 대차게 등을 돌린 스승과 제자가 있다.


덕산리 땅 사기 건은 진짜 화가 나는데 어떻게 추심할 방법이 없을까요?
백운동 땅 이중매매 사건은 그자가 서명한 자료가 있으니 소송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자가 작년에 부당하게 얻은 이익까지 다 받아낼 겁니다. 제자들과 만든 모임 ‘다계(茶契)'는 차라리 '무신계(無信契)'가 낫겠어요. 듣자니 3년 전에 발생한 이자는 공목이가 챙겨 주기로 했는데도 여태 안보내고 있네요. 작년에 만났을 때도 모르는 척하는데 어이가 없더군요. 즉시 보내라 해주세요. 올해 수확한 차도 즉시 보내라 하시고요.
- <운명을 바꾼 만남>-


글쓴이의 격노가 느껴진다. 매운 고추처럼 얼얼하다.


1835년 5월 6일, 정약용은 귤동 마을 윤규노에게 편지를 부친다. 윤규노는 유배 당시 속내를 터놓고 지내던 일가뻘 되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제자들의 파렴치함을 흉본 것이다. 누워 침 뱉기가 따로 없다. 내용만 봐서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갈등 당사자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만 남아 있을 뿐.


이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관료 하나가 서울서 유배되어 왔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았다. 한 때 궐에서 임금님과 일을 했다고도 한다. 호기심을 못 이긴 소년들이 수시로 돌담 너머를 기웃거렸고 그러다 몇몇이 불려 들어간다. 그렇게 사제의 연이 맺어진다.


스승 앞에서 난생처음 붓으로 획을 그을 때는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마음과 달리 문장이 지렁이 기어가듯 삐뚤빼뚤 나갈 때는 정신마저 아득했다. 그러다 글씨체가 잡히고, 더듬 더듬이나마 육경과 사서를 읽어 내려가게 되면서 스승과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 스승이 내린 과제를 하나둘 해내다 보니 식견도 제법 넓어져 갔다. 차와 벗하며 학문 주제를 두고 토론을 이어가다 보면 동창이 부옇게 밝아왔다.


그렇게 정약용은 제자들과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며 정치, 경제, 사회, 사상을 포괄하는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다. 그 결실은 500여 권에 달하는 저술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때만 해도 스승과 제자의 꿈은 하나였고 아름다웠다. 세상을 바꿔 나가 백성들이 잘살도록 하는 일. 하지만 스승이 해배되어 서울로 올라가면서부터 그 꿈은 갈려 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1818년 가을, 그토록 고대하던 해배 소식이 들려왔다. 전별연(餞別宴)이 열렸고 사제 간 연을 소중히 이어가자는 뜻에서 계도 만들었다. 유배 중 모은 전답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서울로 부치게 한 것이다. 위 편지글에 등장하는 다계(茶契)다. 좋은 뜻으로 만들어진 이 모임이 훗날 화근이 되리라고는 그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상경 길, 단출한 세간붙이 뒤로 서책을 쌓은 수레가 줄을 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혼연일체 되어 쌓아 올린 금자탑이다. 그런데 이순(耳順)을 앞둔 스승의 눈에 그 업적은 수확을 앞둔 황금들녘이었다면, 출세가도를 꿈꾸는 제자들에게는 파종을 앞둔 묘판과도 같았다. 이러한 입장차는 갈수록 벌어져 나중에는 봉합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다산의 업적은 한 사람의 공만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든 수준이다. 맵짠 일솜씨를 가진 제자들은 일찍이 스승의 저술 작업에 손을 보탰다. 이학래의 경우 주요 저술에 편집자로 자주 이름을 올렸고, 해배 후에도 20여 년 간 스승 곁에 머물며 저술활동을 보필했다. 이를 볼 때 다산의 연구, 저술 작업은 협업과 분업을 토대로 한 공동연구 성격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볼 때 논공행상에 대한 제자들의 기대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권리나 보상에 대해 요즘처럼 분명하게 해두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기여와 보상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분쟁요인들이 잠재해 있었고, 스승의 해배로 갈등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조선 최고의 학술 집단은 갈등과 반목 끝에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모든 갈등에는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좌절의 순간이 있다.

기대의 좌절 말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상대 안에서 생겼다 사라지는 무수한 기대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를 맺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킨다. 모든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좌절된 기대 총량이 충족된 기대 총량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건 중요하다.


그리고 갈등에는 징후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스승에게서 원하는 게 나올 기미가 없어 보이자 제자들은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슬슬 본전 생각도 올라온다. 스승의 명성이 오르내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고, 거기 내 공도 있노라 귀띔이라도 해주고 싶어진다. 서울에 올라왔다가 인사도 없이 내려간 제자가 있는가 하면, 때가 되어도 올라와야 할 소출이 올라오지를 않는다. 심지어는 스승의 전답을 팔아먹는 일까지 생긴다.


대놓고 따지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지만 서로 그럴 수 없어 속만 타들어 간다. 소득도 없이 소출을 챙겨 올려 보내야 하는 제자들의 심기도 불편하지만, 천릿길이어 그때그때 간섭 못하는 스승의 답답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갈수록 화는 늘고 관계는 악화일로다. 사랑채에 모인 제자들은 야박한 스승을 탓했고, 스승은 영문도 모를 삼자에게 괘씸한 제자들 흉을 봤다. 이때쯤 뭔가 조치가 있어야 했다.




대화란 대놓고 화내는 것이란 우스개 소리가 있다. 한낱 농담 같아 보이지만 갈등 해결에 관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문제가 얽히고설켜 풀기 힘들 때는 대놓고 한바탕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맞붙어서 따지다 보면 그 순간은 기분이 잡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드러난다. 그리고 문제 핵심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이 장기적으로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데 꼭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걸 직접-대립의 패러독스라고 한다.


그럴 경우 문제 해결에 대한 동기가 생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상대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게 되고, 상대를 아낀다는 걸 보여줄 수 도 있다. 생각보다 우리는 상대가 무얼 중요하게 여기는지 잘 모른다. 싸우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잘 싸우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직접 대면하며 생기는 곤란함을 감수하지 않으려 속으로만 대립하는 건 최악의 방법이다. 그럴 때 갈등은 힘을 키운다.


“아니야. 괜찮아. 힘은 들지만 내가 한번 더 하지 뭐...” 이런 식 말이다.


그럴 경우 갈등은 고조되고 더 큰 위협이 따라온다. 실제로 창을 들고 스승 집에 쫓아와서 험한 말을 던지고 간 제자도 있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대립으로 인한 곤란함의 강을 반드시 건너야 한다. 그저 피하기만 하다간 짜증스러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앞의 편지글처럼 수준 낮은 비난이나 행동으로 표출된다. 무엇보다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동기가 사라진다. 그리고 결국 상대는 그저 몹쓸 사람으로만 남게 된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는 대학자와 제자들이 오늘날 법정에 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공에 대한 보상이 부족했으니 제자들에게 추가적으로 보상하라는 명령이 떨어질까, 아니면 요즘으로 말하면 대치동 일타 강사 격인 스승이 제공한 교육으로 보상은 충분했다는 결론이 나올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곤란함을 외면한 결과 스승과 제자 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갔고, 제때 개입하지 않아 안 생겨도 될 피해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처럼 갈등 해결은 늦어질수록 피해는 늘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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