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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Nov 26. 2022

카이사르의 여성편력에서 배우는 관계의 기술

관계의 명약 인정

  2017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그림 한 점이 최고가로 낙찰되었다. 1500년 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로 낙찰가는 약 5, 570억 원에 달했다.


  그렇다면 한 손에 수정 구슬을 나머지 한 손은 수줍은 브이를 하고 있는 예수의 초상을 사들인 사람은 누구일까.


  흥미롭게도 그 주인공은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세자 빈 살만(Bin Salman)이다. 얼마 전 방한해 엄청난 씀씀이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지간해야 공감도 가고 부러움도 생기는 법. 2,470조라는 그의 재산은 도무지 와닿지가 않아 부럽지도 않다.




  그런데 여기 다른 의미로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30대 중반까지 그럴듯한 직업도 없이 그는 1,300 달란트의 빚을 졌다. 병사 11만 명의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연봉을 500만 원으로만 잡아도 500억이 훌쩍 넘는다.


  돈은 주로 자기 관리를 위해 쓰였다. 친구나 후원자들에게 돈을 물 쓰듯 하는가 하면 옷맵시를 중요하게 생각해 치장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사랑하는 애인에게는 호화저택 한 채에 해당하는 고가의 진주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독서광이었던 그는 책을 닥치는 대로 구입해 읽었다. 당시 책은 파피루스에 필사한 두루마리로 매우 고가였다.


  자신감과 탁월함 하나로 살다 간 그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해적 소굴에 납치된 처지에 잠자는 데 떠든다고 해적들에게 호통을 치는가 하면, 자기에게 책정된 몸값을 스스로 올려 해적들을 어리둥절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일화를 보다 보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런 그를 여자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수많은 세도가의 부인과 염문을 뿌렸고, 그가 지날때마다 여인들은 뒤로 돌아 화장을 고쳤다. 원로원 의원 1/3이 그에게 부인을 도둑맞았다는 우스게 소리가 돌 정도였다.


  흥미로운 건 당시 외도하다 걸린 남자들이 부인이나 내연녀로부터 온갖 봉변을 다 당한 반면, 그렇게 바람을 피워대고도 그는 단 한 번의 망신살도 뻗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여성편력에 무슨 비법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인정(認定)이었다. 다시 말해 상대가 부정(否定)당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부정당했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부정이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않다고 반대하는 것이다. 부정당하는 순간 그 대상은 제거되어 사라진다. 생명을 가진 것들의 궁극적 존재 목적은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체가 부정을 당한다는 건 존재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그게 신체적이든 사회적이든 간에.


  특히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부정당할 때 깊은 상처를 입는다. 당시 로마가 지금에 비해 남자의 외도에 관대했다고는 하나 외도를 한 사람이 당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 보니 외도하다 발각된 남자들은 아내에게 무릎을 꿇은 뒤 옛 애인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썼을 것이다. 그렇게 꽁무니를 빼다 내연녀로부터 원망과 빈축을 샀다.


  하지만 카이사르만은 달랐다.

  언제 어디서 옛 애인을 마주치든 한결같았다. 다른 남자들처럼 고개를 슬쩍 돌리거나 가던 길을 돌아서 가지 않았다. 한 때 나와 사랑을 나누던 존재라는 사실과 그녀와 함께 쌓아온 추억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가 혹시라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여자는 있어도 원한을 품는 여자는 없었다. 심지어 사교계에서 여인들은 자기 차례가 오기를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고 한다.


  아쉽게도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생각과 행동 그리고 감정이 일치해 당당하고 솔직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럴때 밀도 있는 사랑도 가능하다. 그는 일하면서 그거 생각하고, 그거 하면서 일생각 하는 남자들과는 달랐다.


  농도 짙은 사랑과 짜릿한 추억 그리고 최고의 애프터 서비스(인정)까지 해주는 남자를 탓할 여자는 없다.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랑, 헌신, 배려 등. 하지만 이 미덕들은 하나같이 주관적인 데다가 추상적이다. 나는 실컷 배려한다고 했지만 상대는 간섭으로 느낄 수 있다. 반면 인정의 효과에는 예외가 없다. 인정받는 걸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인정을 칭찬과 혼동하지는 말자. "김대리는 역시 대단해"는 인정이 아니라 칭찬이다.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평가란 말이다. 칭찬의 이면에는 만일 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비난이 따를 거라는 암시가 숨어 있다.


  상대의 존재 또는 상태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고 봐주는 것, 그 게 인정이다. 내가 주체가 되는 해석이나 평가와 달리 인정은 상대가 주체다. 상대를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망했는가.

  이 세상 것이 아닌 배짱과 자신감으로 살다 간 이 상남자에게 배울 건 '인정'이지 연애 테크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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