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단상
부부관계, 교우관계, 가족관계, 상관관계, 친구관계, 거래관계, 주종관계, 상하관계, 연인관계, 성관계, 삼각관계, 채무관계, 남녀관계, 애증관계, 인간관계, 사제관계, 국제관계, 대인관계, 원한관계, 언약관계, 치정관계.
관계(關係)가 들어간 단어들을 적어보았다. 한 페이지 가득 채울 줄 알았는데 세 줄을 넘기지 못한다. 대개 사람이 축이 되지만 국제관계나 상관관계처럼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연결된 관계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대개는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도 있다.
'관계란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현상'으로 정의된다. ‘당기다’, ‘관계하다’란 뜻을 가진 관(關)과 매다, 묶다, ‘이어 매다’라는 뜻의 계(係)가 결합되어 있다. 어감이 특출 나 보이지는 않지만 만만해 보이지도 않는다. 쉬는 시간 모두가 응축된 끼와 에너지를 발산할 때, 교실 한 구석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조용한 친구처럼 느껴진다. 왠지 우리 인간 존재나 숙명과도 관계있어 보인다. 떼려야 떼어낼 수 없는 피부처럼 와닿기도 한다.
진정 중요한 건 인상적이지 않은 법이다. 그리고 어릴 땐 그걸 잘 모른다. 삶의 종착역에 가까워지며 그 존재감이 드러난다. 관계가 그렇다.
살아가며 관계가 중요하다는 거, 웬만큼 살아본 사람은 다 안다. 돈 그리고 건강과 함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요소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최근 나를 잠 못 들게 한 것도 바로 관계다. 그런데도 요물 같은 돈이나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몸처럼 애지중지 돌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 중요한 걸 따로 배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해나간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배우지 않아도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배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고 자란 집에서 부모형제로부터. 그렇게 배운 걸 밑천으로 우리는 관계를 맺어간다. 자라며 인정보다는 부정을 그리고 비난을 많이 받아 불안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관계에 있어 인색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정은 학교다. 관계를 배우는. 그리고 부모는 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고.
부모가 된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그렇게 자녀가 살아가며 맺게 될 관계의 밑그림을 그려주는 일이다. 그 외 것은 그다음 일이고 부차적이며 누구라도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다. 과거 노예들이 했던. 희한한 건 부모들만 그 비밀을 모른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건 내박쳐 둔 채 그옛날 노예들이 담당했던 일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