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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Dec 11. 2022

폴모리(Paul Mauriat) 악단과 청춘 유감

경음악이 불러온 청춘에 대한 단상

 

우리가 서양을 꽤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를’로 시작하는 레미 구르몽의 '낙엽'을 읊으며 가을을 앓았고, 에디트 피아프의 '빠담 빠담'을 들으며 몽마르트 언덕을 그리워했다. 


  국민학생이던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종합선물세트를 받으면 연노랑 포장지에 에펠탑이 선명한 ‘사브레’를 먼저 찾았다. 바삭하게 구워진 양과자를 한 입 베어 물면 고급스런 단 맛과 고소한 버터향이 혀를 감쌌다.


  총 천연색 어린이 대백과사전은 서양이라는 환상의 저택으로 나를 안내하는 집사였다. 보기엔 그저 가무잡잡한 링처럼 생긴 걸 서독 빵이라고 했다. 빵 더미 앞에는 하얀 앞치마를 두른 금발의 소녀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풍경이 얼마나 생경했던지 실재할 것 같지가 같았다. 


  내가 지면을 통해 유럽의 환상에 빠져 있을 때 아버지는 경음악을 통해 그 허기를 채웠나보다. 폴모리아 악단이 선사하는 심플하고도 세련된 선율은 엄숙주의라는 집단 무의식에 눌려 있던 우리 감각을 불러 일으켰다. 격식에 맞춰 차려입은 귀족이 연상되는 클래식 음악과 달리 경음악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카디건을 걸친 동네주민처럼 다가왔다.


  감성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마다 내 마음속으로는 미지의 세계가 밀려 들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 그 어떤 아픔도 아름답던 시절, 아버지 또한 하나의 청춘이었다.


  세월이 제법 흐른 지금 ‘글렌고인’ 한 잔과 폴모리아 악단의 도움으로 부모님 청춘을 만난다.




  지금의 아버지와는 연결되지 않지만, 그 시절 아버지는 시골집 안방에 전축을 설치했고 레코드판도 사 모았다. 날이 밝으면 아버지는 앞마당으로 나가 큰 동작으로 이불을 터셨고, 그 때마다 안방에서는 ‘아기 코끼리의 걸음마’가 흘러나왔다. 긴 하루가 저물고 사방이 고요해진 밤 전축에서 흘러나오던 곡은 ‘천일의 앤’이었다. 단음의 피아노 선율만으로도 그 스토리가 얼마나 비극적일지 예감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맨발의 이사도라’

  아버지가 출근하고 아침상을 물린 방 한 구석에는 이사도라 던컨 평전이 펼쳐져 있었다. 지면에서는 토슈를 벗어 던진 자유로운 영혼의 몸짓이 펼쳐졌다.

  그랬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지만 어머니 역시 청춘의 의미를 찾아 헤매었나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머니를 지금 이곳, 이 모습으로 데려온 것일까. 나풀거리던 스카프와 함께 떠난 맨발의 혁명가가 될 수 없었던 어머니 삶의 시계는 그때부터 멈춰버렸을지도 모른다. 숙명이 주인인 불행이라는 집 안에서. 나는 좀 더 일찍 그 집을 떠나야 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두 분을 이 곳으로 이끈 것이 또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고 있다. 서둘러서 그리고 에둘러서.


  “넌 딱 맥주 세 잔 마신 것처럼만 살아가면 좋겠어” 왕십리 호프집에서 어느 선배가 말했다. 


  그 때 왜 나는 구름처럼 흘러가던 아버지처럼 과감하지도 무모하지도 못했을까. 세상을 편하게 받아들이는데 무엇이 맥주 세 잔을 요구했던 것일까.


  테두리가 진홍색으로 물든 까만 벨벳이 온 마을을 덮고 가로등 갓 아래로 부연 불빛이 쏟아지면, 한 낮의 휴식을 끝낸 날벌레들이 조명 아래로 모여들었다. 온종일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켰을 전봇대 위로는 큼지막한 나방이 공연을 기다리며 붙어 있었다. 숨을 죽인 채로. 


  아버지 특유의 헛기침 소리가 먼저 들어서고 파란 대문이 울음소리를 내면 양 손에 서류 보따리를 든 아버지가 서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메르시 세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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