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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Jan 13. 2023

관계의 밑그림

건강한 관계에 이기심이 필요한 이유

  수년 전 일이다.

 타지서 혼자 지내는 아들이 맘에 걸리셨는지 어머니로부터 올라가겠노라는 연락이 왔다. 보지 않아도 음식거리를 잔뜩 장만해 오실게 분명하다.


 이에 차를 몰아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그런데 대로변에 계셔야 할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주정차 금지 구역이라 차를 오래 세울 수 없어 마음이 급해졌다. 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자 연결음이 몇 번 울렸고, 반가움과 곤혹스러움이 섞인 표정으로 어머니가 나타났다. 역시나 양손에 짐을 잔뜩 든 채로. 왜 대로변에 계시지 않고 골목에 들어가 계셨냐고 묻자 어머니는 뜻밖의 답을 하셨다.


대로변에 서 있다 보니 택시가 자꾸 서질 않겠냐. 미안해서 그랬지…


 어머니를 보고 차를 세우는 택시 기사가 미안해 몸을 숨기셨다는 거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당에서도 어지간해서는 반찬 추가하는 걸 말리신다. 종업원 귀찮게 하는 일이라는 게 이유다. 우리가 지불하는 음식 값에 서비스 비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소용 없다. 종업원이 반찬을 가져올 때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환한 미소와 함께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라며 이유를 붙이신다. 그래야만이 맘이 편하다는 듯.


 이런 일도 있었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을 입고 아버지와 함께 투표장에 갔다가 단골 옷가게 사장을 보셨다고 한다. 그러자 갑자기 한쪽 구석에 숨더니 그 사장이 사라질 때까지 나오시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를 아버지는 최천사라 부른다. 만인을 위한 이 한없는 배려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타인이 어떤 존재인지에 따라 행동한다. 다시 말해 갈등이 닥칠 때 우리는 내가 중요한가 아니면 상대가 더 중요한가의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는 말이다.


 나에게 상대가 중요하고 그 외 대안이 없다면 복종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대안도 많다면 굴복시킬 수 있다. 더 이상 보지 않는 회피도 있다. 상대와 나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다. 바람직한 건 상대와 나, 욕구 충족과 관계 둘 다를 고려한 행동일 것이다. 타협이나 협상 말이다. 그런데 이는 서로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걸 얻겠다는 의지도 확고할 때 가능하다. 즉 서로 이기적일 때 성립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타인을 어떤 존재로 보고 계시는 걸까. 내가 보기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존재로 여기시는 것 같다. 즉, 갈등이 두려운 것이다. 그게 바로 어머니가 상대를 불편하거나 불쾌하게 할 행동을 꺼리시는 이유다. 마치 <인간실격>의 ‘요조'처럼. 내 욕구를 포기하면서까지. 그건 아마 갈등으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낼 힘이 부족해서 일 것이다.


어머니와는 정반대인 사람도 있다. 상대야 어떻든 내 욕구를 먼저 충족하고 보는. 이런 사람을 우리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상대 비중을 크게 두는 관계의 밑그림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래서 어머니 밑그림이 더 잘 보이고 거슬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그 윤곽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배려'라 부를 수도 있는 이 미덕은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나를 녹여가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타인을 위한 당연한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이기심은 생명력이다. 따라서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도덕도 윤리도 관계도 그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한없이 상대에게 맞추기만 한다면 갈등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존재가 희미해진다. 적절한 이기심을 갖고 서로 조율해 나가는 것. 건강한 관계의 필수 조건이다.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양주가 한 말로, 그런 이기심의 본질을 잘 표현했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은 통념을 넘어 진리에 가깝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남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대한다는 건 그 이기심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는 행동이다. 언제나 타인에게 나를 맞추기만 해서 쌓이는 폭탄은 언젠가는 터질 것이고, 그 파편은 가까운 곳으로 날아가 꽃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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