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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Jan 17. 2023

미래를 그리는 화판

자녀의 미래를 그리는 데 있어 부모 역할


 어린 시절 미술수업이 있는 날 등교 필수품이 있었다. 화판이다. 학교까지 갔다가 그거 챙기러 집에 돌아간 날이 허다했다. A4용지 두 개 정도 크기의 얇은 합판으로 어깨에 멜 수 있게 끈이 달렸고, 크레용과 도화지를 담는 망도 달려 있었다. 문방구 입구 한쪽 벽면으로 화판들이 주욱 걸려 있었다.


 시간표에 미술이 보이면 기분이 좋아졌다. 기대감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수업이 시작되고 그릴 주제가 정해지면, 가벼운 탄식과 함께 아이들 표정이 제각기 바뀐다. 아이디어 구상에 신나는 표정, 뭘 그릴지 골똘한 표정,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 뒤통수에는 '아 망했어'가 쓰여 있었다.


 화판은 그릴 수 있는 그림의 크기를 결정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도화지와 화판은 사라지고 대신 큼지막한 스케치 북이 등장했다.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한 친구들은 이젤도 갖추었다. 책상에 코 박고 어젯밤 꿈속이나, 놀이동산, 부모님 얼굴을 그리는 게 고작이었던 도화지에는 다 담을 수 없는 주제와 구상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 커서도 어릴 때 쓰던 화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소질과 재능이 제대로 꽃 피우지도 못한 채 사장될 수도 있다. 작은 도화지와 화판에서 벗어나 맘껏 자신의 재능과 소질을 가늠해 봐야 한다. 자그마한 소품을 주로 그릴지 아니면 원대한 풍경이나 배경을 그릴지는 누가 정해 줄 일이 아니다. 재능이 할 일이다.


 그런데 자기 미래를 그릴 화판을 다른 이가 결정해버리기도 한다. 대개 부모다. 그들은 하나 같이 다 너를 위해 그런 거라고 말한다. 자녀가 그 알을 깨뜨리고 나오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그 알을 깨뜨리고 나오는 투쟁이 너무 늦어버린 경우다.




 어려서부터 나는 “너는 사업은 절대 안 된다”란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그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었다.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인 것도 같기도 하고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거기다 도덕적 이상이 높았던 어머니는 경제관념 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훨씬 강조하셨다. 그 덕에 나는 경제에 지나치게 무관심했다. 상경계열로 진학하는 친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범대를 졸업한 뒤 어머님 바람대로 교직으로 가는 대신 대학원에 진학했다. 진로에 대해 내가 내린 첫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평생 내가 거할 세계가 연구실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었다. 내 길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품은 건 캐나다에서였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 안에 방치되었던 또 다른 ‘나’가 고개를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다니던 연구소를 그만두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벤처기업에 합류했을 때 어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어머니의 이상인 가르치는 일과 한발 더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내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씀드렸을 때는 탄식을 하셨다. 네가 왜 사업을 하며 거기다 대표까지 맡냐는 것이다. 연배였던 기술이사에게 대표직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마치 내가 깨끗한 손에 숯 검댕이를 묻히러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하셨다.


 비즈니스 세계에 흥미를 붙이고 인정까지 받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건 작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물론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가끔은 평탄한 길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가 사람에 관심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직장을 다니며 상담대학원을 졸업해 상담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코너 하나를 더 돌아 지금은 갈등을 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돌아 돌아 원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 대해 남탓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좀 더 일찍 용기를 갖고 주체적으로 살았다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2012년, 홀로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에 성공한 16세 소녀가 회제였다. 로라 데커라는 네덜란드 소녀로 돛이 두 개 달린 11.5m짜리 요트를 타고 500여 일간 망망대해를 누빈 것이다. 대학원 시절 조사선을 타고 일주일 간 항해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Oh Jesus! 다. 네덜란드 당국이 어린 소녀 홀로 항해를 하는 건 위험하다고 막았지만 소송을 통해 마침내 항해를 허락받았다고 한다.


 그 소녀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부모도 7년 간 요트로 세계일주를 했고 일주를 하는 동안 배에서 데커를 낳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모험과 도전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답게 6살 때 이미 노를 저어 강을 건넜다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Maiden Trip>이란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대담한 항해 또는 첫 여정 로라데터 각본, 주연

 부모가 그려주는 미래만 바라보며 나가는 아이와 홀로 대양 한가운데서 고독과 경이로움을 경험했을 소녀가 그릴 세계는 분명 다를 것이다. 전자는 자칫 후자가 경험한 용기와 도전 그리고 거기서 얻어질 환희와 희열을 평생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이 개척해 나갈 세계의 크기는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것이 소중한 인생이 회한으로 잠식당할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다.


 부모는 내가 그린 세계가 지금은 옳고, 당연하며, 바람직할지 모르지만 미래에 자녀가 볼 때 좁고, 비루하며 취약한 것으로 변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오늘날엔 더더욱 그렇다.


 부모가 중요한 건 자녀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그저 위험한 곳으로만 보게 될지 아니면 자신 있게 도전하고 탐색해 볼 흥미로운 곳으로 보게 될지. 부모는 자녀가 밖으로 나가 도전하다가 상처 입었을 때 돌아와 회복하고 다시 출발하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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