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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Jan 18. 2023

신이 우리에게 유치함을 허락한 이유

소설 <설국>에 나타난 허무에 관하여

스웨덴 학술원(Sweden Academy)은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선정하며 다음과 같은 선정이유를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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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학술원(Sweden Academy)은 196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선정하며 다음과 같은 선정이유를 발표한다.   

  “자연과 인간 운명에 내재하는 존재의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유명한 소설 첫 문장 하면 빠지지 않는 이 세 문장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환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보지도 않은 것들을 비평하며 탁상공론을 일삼던 소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그 긴 터널을 통과한다. 그리고 순백의 세계에는 어쩌면 그의 삶을 바꿔 놓을지도 모를 여인이 있다. 물론 책을 완독 했거나 작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임 안다. 하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고마코는 이 무심한 남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애가 탄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방문해 시골 온천장의 게이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이 한량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순박한 여인의 순애보를 받아줄 게 아니라면 그렇게 거리만 둘 게 아니라 아예 쳐다보지도 말았어야 한다는 의견부터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고, 둘의 처지를 볼 때 오히려 시마무라가 그녀를 존중해 준 것이라는 의견까지.  

  오욕칠정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의 관계는 그렇게 위험하여 조심스럽다. 기쁨이나 성장 같은 소중한 열매를 수확하기도 하지만 분노나 질투 서운함과 같은 부산물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유치하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엄연히 가정이 있고 주변인으로만 살아온 시마무라가 시골 온천장 게이샤인 고마코의 연정을 선뜻 받아 주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그 여인의 삶이 가볍지가 않다. 그렇다보니 시마무라의 손을 이끌며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공개하는 고마코에게 무정한 남자는 그저 “헛수고”라고 말할 뿐이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이들의 관계는 불이 난 고치 창고에서 떨어진 요코를 고마코가 부둥켜안고 울부짖으며 결단이 난다. 설국을 영문으로 번역한 사이덴스티커는 결국 고마코는 요코를 과중한 운명으로 받아들여 시골 온천장에서 신세를 망쳐갈 거라고 말한다. 춤 선생 아들 유키오에게 그랬던 것처럼.  

  플랫폼 너머에서 시마무라를 배웅하는 고마코가 초라한 한촌(寒村) 과일가게에 있는 더럽혀진 유리상자 속 이상한 과일이 단 한 개 잊힌 채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그를 만나기 위해 빌려 입을 옷이 이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고마코가 고백할 때에는 지면 넘어 지켜보는 입장임에도 애틋함으로 가슴이 아려온다. 하물며 실제 맺게 되는 관계라면 그 감정은 배가 될 것이다.    

  시마무라는 이처럼 잠시 점멸하다 덧없이 사라지는 인간과의 관계보다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계절의 변화나 우주의 신비와 교감하는 데 더 진지하다. 그리고 체온과 전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권태감과 함께 괴로움을 안겨주기도 하는 인간의 살갗보다는 말라붙어 바스라져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곤충의 껍질을 집어드는 게 훨씬 편하고 깔끔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 현실 세계로 돌아와 다시 익명성을 획득한 그는 어떠한 관계도 마다한 채 서늘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망하다 때가 되면 고마코와 함께 바라보며 감탄하던 우주 속으로 사라질 거다. 그렇게 살다가 자신이 정말 살아있는지 궁금할 때면 한 번씩 관심거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  

  신을 거부하고 인간에게 마저 등을 돌린 채 바라본 인생은 그렇게 허무하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유치함을 허락했는지도 모른다. 서로 그렇게 아웅다웅 관계 맺고 흩어지지 말도록. 유치함을 승화시키는 건 우리 몫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두 살과 세 살에 부모를 그리고 열 살에 누나를 잃었고, 열다섯에 자신을 돌봐주던 조부모까지 잃고 완전한 고아가 된다. 그는 스스로를 누군가의 따뜻한 눈 빛 만으로도 감동하고 마는 고아근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이덴스티커는 만일 실제로 누군가 그의 앞에서 발레를 춘다면 아마 그는 눈을 감고 말 거라고 말한다. 욕구와 감정으로 충만한 인간의 육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발산하는 생명력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일 거란 말이다.  

  그런 그에게는 늘 지나치게 주고거나 서로 장악하느라 요란한 인간들의 관계보다는 인간에게 바라는 것 없이 경이로움을 안겨주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교감하는 게 익숙했을 것이다.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대신 끝없는 방랑을 하며 시를 썼던 하이쿠 시인 바쇼가 그랬듯이. 설국도 한편의 긴 하이쿠다. 거기서 순간 점멸하다 사라질 두 남녀의 관계는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하나의 선이고, 요코는 작품에 긴장감을 더해줄 하나의 빨간 점.  

  작가는 결국 자신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극복해 자연에 대한 탐미주의적 시선과 회화적 구성 능력을 최고치로 발휘해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처럼 피붙이의 따뜻한 체온조차 기억할 수 없었던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몇 년 뒤 자살로 삶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내려는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마 “다 헛수였다"란 말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이쿠와 설국(雪國)>

바쇼는 일본의 전통 시 하이쿠를 소설에 구현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바쇼의 하이쿠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싶은 문장이 있습니다. 고마코와 시마무라가 불난 고치창고로 달려가는 장면입니다.


"고마코는 콱하고 몸을 부딪혔다. 시마무라는 한 발짝 비틀거렸다. 길가의 엷게 덮인 눈 속에 파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다음은 바쇼의 하이쿠입니다.


눈 내린 아침

파만이 채소밭의

유일한 표시


파 하얗게

씻어서 세워놓은 

추위여



시인 류시화는 "흰색과 초록색의 대비에서 겨울정경이 풋풋하게 다가온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첫 세 문장도 '앗다', '낫다', '맞다'로 각운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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