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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Feb 07. 2023

우리는 가끔 동굴로 돌아간다

관계 전략의 두 축 Fly or Fight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외부환경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적 행동이자 생존 본능이다. 모니터링 결과가 우호적이라면 괜찮지만 불쾌하거나 위협적이라면 문제가 된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생명체는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때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다. 도망치기(Fly) 아니면 싸우기(Fight). 이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 전략이다. 어두운 공간이나 뜨거운 물, 무더위 같은 물리적 환경은 기술적으로 통제가 가능하지만 사람이나 제도와 같은 사회적 환경은 기술만으로는 극복하기 쉽지 않다.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모임에 나갔는데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보자마자 불쾌한 감정이 올라온다. 동물이라면 즉시 뛰쳐나오거나 으르렁 거리겠지만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슬쩍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던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과거에는 인간들도 다른 동물들과 유사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온다면 놀라서 들판으로 도망치거나 돌도끼를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 방법은 생존에 그리 유리하지 않게 되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인간은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다. 옷걸이를 들어 던지기보다는 상대 부서 예산을 삭감하거나 프로젝트가 좌초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계곡으로 달아나 숨기보다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거나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를 무시하는 식으로.



  

  심장이 뛰고 이성이 마비되는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보다는 여전히 이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인 방법(Fly or Fight)을 선호한다. 빛나는 이성의 들판에서 보다 나은 방법을 찾기보다는 어둡고 축축하지만 사방에서 덮칠지도 모르는 적들을 막아주어 안전하게 느껴지는 수만 년 전 동굴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적개심으로 가득 차 상대를 제거할 궁리를 한다. 지금 내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대상이 사라질 때 행복해질 거라는 환상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소장을 작성하거나 모임에서 상대가 사라지길 바란다. 세련되게 제거하는 것이다.

  갈등을 관리한다는 것은 이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익숙한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대와 내가 공존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다고 믿고 함께 찾아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훈련 없이는 유구한 세월에 걸쳐 내려온 Fly or Fight 유전자의 작용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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