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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Feb 08. 2023

갈등과 절대진리라고 하는 환상

우리 이성을 마비시키는 환상들

  몸이 아프거나 상태가 안 좋은 걸 우리는 '질병‘ 또는 '질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 관계에 이상이 생긴 걸 뭐라고 할까. ‘갈등'이다.

  질병에 걸리면 우리는 약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며 몸을 관리한다. 하지만 갈등에 빠졌을 때 우리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면 회피 하기에 급급하다.

  사람 둘 이상 모이면 갈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는 존재와 관련된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고 침범 당하기도 한다. 갈등은 누군가로부터 그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느끼면서 시작된다.

  동물들의 경우 그 영역이 지리적이고 분명해 침범 여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물들은 생존과 직결되는 그 영역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영역표시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넘보는 동물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린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그 영역이 지리적이지 않을뿐더러 복잡하기까지 하다. 동물들의 영역은 사냥이나 번식 등 물리적 생존과 관련 있지만 인간의 경우 그 외에도 꿈이나 가치, 신념 처럼 정신과 관련된 영역이 있다.

   그처럼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쉽게 침범하기도 하고 침범 당하기도 한다.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낄 때 직접적으로 반응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 사실을 숨기고  태연한 척한다. 그러다가 깊은 갈등의 골에 빠진다. 이때 고통스러운 감정과 함께 이성을 마비시켜 갈등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 ‘절대 진리의 환상'이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느껴 두렵거나 긴장 될 때 순간적으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자신의 생각을 불변의 진리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수년 전, 과거에 잠깐 일을 함께 했던 지인과 지방에 내려갈 때의 일이다. 지인에게 지방의 모대학 프로젝트를 소개하러 가는 길이었다. 잠시 휴게소에 들렀을 때 나는 일과 관련해 통화를 하느라 차에 남았고 지인 혼자서 휴게소에 갔다.

  한참 통화 하던 중 나는 차 쪽으로 다가오는 지인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무척 당혹스러운 장면을 보게 된다. 차로 다가오는 지인의 한 손에는 담배가 그리고 나머지 손에는 지기 커피가 들려 있었다. "가실까요?"란 말에 당황해 출발 하긴 했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당시 나는 지인이 당연히 내 몫까지 챙겼어야 했고, 그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때문에 내가 입은 피해는 상대가 보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상대가 그에 대해 결코 정당화할 수 없을 거라고도 믿었다. 이게 갈등 모델이다.

  그런 상황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당연히!"다. "당연히 챙겼어야 하는 거 아냐? 누구 때문에 가는 건데"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잡고 물어봐! 백이면 백 다 그렇다고 하지!"

  그때 나는 그러한 생각들이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진리일 거라는 환상에 빠졌던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 그런 믿음을 깨는 의견을 냈다면 무척 억울해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 나는 어떤 영역을 침범당했던 것일까. 내 관심사는 동물들처럼 먹을거리에 있지 않았다. 커피는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이다. 그때 지인으로부터 침범당했던 건 같은 편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는 게 배려라고 하는 가치 또는 신념이었다. 그리고 상대로부터 받았다면 좋았을 인정과 애정 욕구였다.

  이처럼 갈등은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영역 이 침범당하거나 침해당했다고 느끼며 시작된다. 그리고 분명 상대가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했다고 믿어버린다.

  하지만 많은 경우 상대는 별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리고 내가 명백히 문제라고 믿어버렸던 그 행동은 내 입장에서 문제인 경우가 많다. 갈등은 그렇게 실체가 없는 환상 속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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