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갈등에 속수무책인 이유는 예고 없이 찾아와 좋았던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등 예방이나 관리 역량을 키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찻잔 속 태풍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일파만파 퍼져 갈등 당사자 간에는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한다. 갈등의 이런 속성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맘 졸이거나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로 인한 비용도 상상을 초월한다. 한 해 200조 원이 넘는 돈이 갈등으로 인해 사라진다.
다행인 건 그 특성들이 조금씩 밝혀져 모델화 되었다는 점이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갈등이 있지만 대개는 다음 과정을 거치며 힘을 키운다.
1. 상대가 영역을 침해하거나 기준을 위반했다고 느낀다.
2.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다.
3. 상대는 그러지 않았어야 했고,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4. 그러니 상대가 피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5. 그에 대해 상대는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이없어 보이는 이 과정은 순차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격류가 흐르듯 순식간에 휘몰고 지나간다.
침범당했다고 느낀 당사자는 긴장과 함께 생존을 위한 투쟁본능이 발동한다. 그리고 이성은 마비된다. 더 위험한 건 순간적으로 환상에 빠지게 된다. 내 생각이 절대 옳다는 '절대진리의 환상'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는 진리(내 생각, 기준)를 범한 범죄자,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이때 상대방이나 제삼자가 그에 반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얼마나 분노가 일겠는가.
이때 흔히 나오는 반응이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 아냐?"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봐! 다 그렇다고 하지"
이때부터 이성은 무엇이 옳은지 찾기보다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입증하려 분투한다. 우리 이성의 본연의 기능은 진실을 찾아 나가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은 자기 오류를 지극히 혐오하여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쪽으로 발달했다. 세상을 내 주장에 끼워 맞춰서라도 말이다.
갈등에 빠졌다면 또는 빠지게 된다면, 혹시 지금 내가 절대 진리의 환상에 빠진 건 아닌지 돌아보자. 그리고 반응하기 전 시간을 주자. 서 있는 곳이 다르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