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세계(the quantum world)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마술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좌충우돌하던 입자(particle)가 갑자기 음성이나 물결과도 같은 파동(wave)으로 변하는가 하면, 안 볼 땐 너울 치던 파동이 관찰하는 순간 입자가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인간관계에서도 그와 유사한 현상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토록 각을 세우며 따지던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쿨해진다. 사람이 어찌 저럴 수 있지? 하다가도 나 또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물결처럼 잔잔하다가 어떨 때 입자처럼 단단하고 깐깐해지는 걸까
대학에 막 입학해서의 일이다. 당시 나는 연구실에서 생활하며 박사과정 선배의 실험을 돕고 있었다. 유전학 실험에 쓰일 초파리를 관리하는 집사가 내 임무였는데 그중 virgin selection 작업이 고달팠다. 메이팅(mating) 하기 전의 암컷 초파리를 격리시키는 일로서 자다가 일어나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런 나에게도 낙이 있었는데 저녁식사를 마친 뒤 경비 아저씨와 바둑을 두는 일이었다. 혼자 밤 새우는 게 무료했던지 아저씨는 종종 나를 불러 바둑을 두자고 했다.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바둑을 두다 보면 나이차도 사라져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공과 사 구분이 명확해도 너무나 명확한 아저씨의 태도였다. 예를 들어 실험실로 돌아가며 건물 문이라도 제대로 닫지 않았다가는 금세 태세 전환을 한 아저씨에게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럴 때면 언제 우리가 바둑이라도 둔 사이였냐는 듯 불같이 화를 냈다.
처음엔 극적인 온도 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뭔가 서운한 느낌도 들었다. 심지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방금 전까지 함께 웃으며 바둑을 둔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훈훈하던 분위기가 사소한 실수 하나로 깨져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관찰이 행해지는 순간 파동이 입자가 되듯. 원래 그런 분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누구 앞에서 입자 상태로 변하는 걸까.
서로 신뢰하고 친밀하며 기대나 협조에 대한 욕구가 강한 상호 의존적 관계일 때 그렇다. 연인이나 가족 말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쿨하던 사람도 가족이나 연인 앞에서는 갑자기 옹졸해진다.
의존적이지 않은 관계에서는 감정적 욕구가 높지 않아 차이를 쉽게 받아들인다. 마치 물결이 서로 부딪쳐도 반발하지 않고 통과해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감정적으로 긴밀히 얽혀있지도 않아 관대하고 문제에 대해서도 너그럽다.
하지만 깊이 의존하는 관계일수록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된다. 쉽게 불신에 빠지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쉽게 대화를 중단하고 힘겨루기 없이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경계가 분명하고 파괴적 에너지로 가득한 입자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다시 파동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양자세계에서 입자와 파동의 상태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가 온도이다. 절대온도 아래로 온도를 계속해서 낮추다 보면 입자는 어느새 파동이 되어 있다.
관계에서는 감정이 온도다. 감정이 뜨거워질수록 우리는 견고한 입자가 된다. 돌진하거나 반발하는 힘도 강해진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실질적인 문제보다는 감정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감정을 다루기 위해서는 객관적 사실을 따지기보다는 상대가 관계에서 경험한 주관적 경험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감정적 위협이 될만한 요인들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템포를 죽이고 서로를 인정하며 속에 있는 것들을 나누다 보면 감정 온도는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맹렬히 움직이며 충돌하던 입자가 어느새 부드럽게 진동하는 파동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