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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혁 Aug 17. 2023

module 5: 경청이 노동인 이유

I Know! 다 안다는 착각

 오늘도 나는 대화를 나누고 난 뒤 후회를 한다.


 이번에도 또 상대방 말을 제대로 듣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때 조금만 더 참을걸. 뭐가 그리도 급해 끼어들었을까?


 대화를 시작하기 전 나는 다짐한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지긋한 눈 빛으로 상대 눈을 바라보며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막상 대화에 들어가면 그 여유는 어디 가고 사자 무리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맴도는 하이에나처럼 끼어들 틈만 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상대방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구워지는 빵처럼 내 안에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게 있다. 내 '의견'이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강하게 떠오르는 그 걸 견디는 게 고역이다. 인내심의 바닥이 거의 드러날 즈음에 내 의지는 "안돼!"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미 그것은 본능처럼 밖으로 나와있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걸 막는 건 역부족이다. 순간 후회를 하지만 대화 중에 그 실수는 수차례 반복된다. 그러고 보면 상대방 말의 마침표를 기다리는 것보다 초조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이처럼 경청은 노동이다. 상담료도 일종의 경청이란 노동의 대가이다.

 



 그렇다면 남의 말 듣기가 그토록 힘든 이유는 뭘까.


 그건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I Know! 알았다고! 그러니까 됐어, 거기까지만!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이젠 내 차례야! 특히 자녀나 오랜 친구라면 그 정도는 심해진다. 심지어는 상대방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 아는 걸 듣고 있으니 얼마나 무료하고 따분하겠는가? 쓸모도 없다고 생각하는 걸 참고 듣는라 그토록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다 아는 걸까?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몇 마디 말을 듣고 어떻게 그 사람을 이해할 수는 있겠는가. 그저 경험에 비추어 안다고 착각하는 거다.


 자기 의사를 직접적으로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기도 힘들지만, 대놓고 말하지 못해 돌려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상대방을 다 안다고?




 듣기란 어떤 면에서 말하기나 쓰기, 읽기보다 힘들다. 귀를 열고 가만히 앉아 있다고 듣는 게 아니다. 제대로 들으려면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 외에도 이면의 동기와 감정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 의견을 뒤로하고 상대 생각을 이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걸 적극적 경청이라고 하고 거기에는 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적극적 경청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1. 서둘러 해결책 제시하기.

 인간에게만 있는 상징화 능력은 어떤 물체가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변할지 유추할 수 있게 해 준다. 불에 한번 데어봐야 화상의 고통을 아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데어보지 않고도 불을 조심하게 되는 이유도 그 능력 때문이다. 그 능력 덕분에 우리는 습관처럼 문제의 답을 생각해 낸다. 하지만 상대는 문제의 답을 구하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그건 상대가 더 잘 안다. 단지 확신이 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그냥 들어주면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


2. 성급히 판단하기

 우리는 아나운서가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아나운서들이 전하는 정보처럼 완벽하게 정리된 것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떨어지는 낙엽이 보내는 정보만큼이나 의미 없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거기서 제대로 정보를 차아내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5%의 정보를 얻기 위해 95%의 무의미한 정보를 들어야 할 때도 있다.


3. 의견 만들기

 내 생각이나 의견은 바닥에서 솟는 샘물처럼 솟아 나온다. 일단 만들진 의견은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때부터는 호시탐탐 그걸 내놓을 타이밍만 재게 된다. 그걸 막는 방법은 상대 말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없다.


4. 평가나 비판, 섣부른 위로, 가르침이나 조언, 경고 등은 내뱉은 순간에는 뿌듯할지 몰라도 대화를 끝내고 돌아설 때 후회하게 만드는 일등공신들이다.


 카프카가 말했던가.

 초조해하는 건 죄다.


 의견을 급조해 내놓은 것이 문제지 늦게 만들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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