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도시에서 살아가기
최근 이사 준비로 바빴다.
'이사 준비'라는 단어의 범위가 굉장히 다양해서 단순히 짐을 싸는 행위만을 말하진 않음을 해본 사람들은 알것이다. 그것도 혼자.
10여 년 전 지방에서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왔고 거의 매해 이사를 했다.
역마살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2년 계약을 해도 중간에 자의든 타의든 나가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주인이 집에 들어와야 하거나, 내가 직장 문제로 이사를 가야 하거나 하는 일들...
뿐만 아니라 이사할 때마다 매번 속 썩는 일이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청소문제... 지금 생각해보니 큰 일도 아닌데 그 땐 얼마나 객지 생활이 서럽게 느껴지던지 ㅜㅜ.
새 직장을 잡아서 살던 원룸 오피스텔에서 이사 나가는 날이었다. 당시 나는 500/50 월세에 살았고(지금과 별반 다름없는 형편... 쿨럭) 이사하는 날 갑자기 주인이 짐을 빼는 집으로 들이닥쳤다. 혼자 사는 나는 이사 들어가는 집에 가서 청소와 이삿짐 배치를 서둘러해야 해서 이 곳의 원룸에 짐이 얼추 빠지기를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짐이 거의 빠지고 마침 주인이 온 시간은 나는 새집으로 출발해야 하는 그때였다.
팔짱을 끼고 5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을 천천히 그리고 유심이 살폈다. 한참을 살피더니 쿡탑에 낀 기름때를 보며 손가락을 펼쳤다.
"이거, 말끔하게 청소해놓고 가세요."
계약 날에도 남편만 오고 자신은 오지 않아서 초면이었다. 단지 그 여자 주인의 이름만은 기억이 난다. 000....
매달 인색한 월급에서 거액이 그녀의 통장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리킨 쿡탑의 기름 때는 내가 이사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자국이었다.
세척 도구는 모두 이삿짐센터에서 포장해간 상태였다. 나는 그녀의 완고하고 화난 표정과 함께 온 부동산 직원의 암묵적인 동의를 보고 더 항변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어서 이 기름때를 지우고 이 집을 나가고 싶었다.
그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급하게 오피스텔 건물 일층 편의점에 가서 수세미와 세제를 샀다. 검은 봉지에 그것들을 들고 집으로 오자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스스로도 내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민망했을 것이다. 아니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젖은 수세미로 주변을 불리고 세제를 풀어 기름때를 벅벅 닦았다. 허옇게 일어나는 세제가 곧 누렇고 검게 변했다. 몇 번을 급히 청소하며 내 옷에는 세제와 오물이 튀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겨우 그곳의 청소를 마치고 이사를 들어가는 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은 더 가관이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곰팡이와 기름때가 곳곳에 가득했다. 생각해보니 이 집을 볼 때 곰팡이와 기름때가 얼룩진 곳들은 살던 사람이 절묘하게 짐으로 다 가려놓았던 곳이다. 결국 청소업체에서 더 많은 추가금을 요구했고 나는 그것을 지불하고서라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끔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이사 들어가는 그 공간에서 내 삶을 펼칠 꿈을 꾸듯, 떠나는 이 공간에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삶을 펼칠 것이라는 것.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유쾌하지 않은 이삿날의 기억은 이런 공간에 대한 작은 성찰을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도시에서 혼자 살며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공허함이 싫진 않다. 하지만 이사하는 날이 되면 혼자가 아니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이사 경험으로 이제 적응이 될 만도 하지만 이사를 며칠 앞둔 지금 다시 그런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남은 며칠 나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겼던 이 공간과 대화하며 '좋은 이별'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