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도 비난도 나는 왜 불편하기만 한 걸까?

자기 사랑의 시작_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기

by 김나은



누군가에게 비난을 듣고

그 자리에서는 쿨한 척 하지만

돌아서서 혼자서 며칠을 끙끙거린 적이 있는가?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화가 나는 경우도 많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게 비난을 받은 거 같아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시원하게 상대방의 허점을

찔러서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독선적인지 알려주고 한방 날리고 싶다.


이러한 생각과 반대로

누군가 나의 장점을 조금만 과하게 포장해서

칭찬을 받으면 가시 방석에 앉은 것처럼

엉덩이가 들썩 들썩거리며

그 상황을 빨리 회피하고 싶다.


... 분명 칭찬인데 나는 왜 그렇게 불편했을까?


비난은 싫은 게 당연하지만

칭찬은 들을수록 더 계속 듣고 싶어야 하잖아?


나조차 이런 내가 참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기 사랑에 대해 어느 글에서 보았던 글귀가 새삼 떠올랐다.


“잘난 나도 못난 나도 사랑할 수 있어야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칭찬과 비난,

장점과 단점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일.

그것을 참으로 견디기 힘들어했었던 것이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지 않았다.



"나를 있는 그대로로 바라본다는 것"


그것이 된다면 누군가 나를 이렇게 저렇게 평가해도 그리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남을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널렸고

그 사람들을 모두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


(그리고 나도 종종 남을 참 쉽게 평가한다.

사람들이 평가라는 것에 조금은 더 신중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나조차도 그런 면이 많다.ㅜㅜ)


상대방의 칭찬이나 비난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의 시각으로 나를 본 것이다.


나는 타인의 시각으로 재단될 만큼

단순하지는 않으며 타인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하기를 반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상대방의 평가에 조금씩 편해졌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타인이 가진 입체적이고 다양한 차원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단순한 말속에 인간이 풀어야 할 심오한 숙제가 담겨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기에

상대방의 평가에 그렇게 발끈하는 것일까?

알고 보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잖아?”


나는 나의 사고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나라는 틀을 벗어나 나를 바라볼 기회는 쉬 오지 않는다.


그런데 타인이라는 전혀 다른 존재의 눈으로

나를 보고 무언가 피드백을 준다.


그건 어쩌면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일종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말들이 모두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남이 어떻게 보든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지만 조금의 가능성은 열어둬도 되지 않을까?


상대방의 어떠한 평가에도 바르르 떨기보다

'그런가? 내가 그런 면이 있나?'라고 생각해볼 여유는 가져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의 여유는

조금 떨어져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 여유는 나를 옥죄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부터

스스로를 조금씩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있어도 나는 나를 인정해.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해!”라고 되뇌어 보자.


자신에 대해 어떠한 평가에서도 자유로워지기.

그것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기 사랑의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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