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흔이 넘어도 미혹함은 줄지 않는다.
-부린이,
-주린이..
요즘 어느 분야나 일에 대해 잘 모르거나 초심자일 경우 -린이를 붙이곤 한다.
젊은 시절, 나의 마흔 이후를 떠올리면
(나에게 40대라는 것이 올 거라 쉬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단순한 어른을 넘어 모든 것에 완성형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내가 서른아홉에 그리도 큰 허무감에 사로잡혔던 이유는 결혼을 안 해서도, 아주 멋진 직장인이 되지 못해서도, 남부럽지 않은 재산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들이 아주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20대, 30대처럼 지나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쓰러지는 이 갈대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본 어른 중에(지금 나에게 어른이라 함은 50대 이상...) 흔들림이 없는 분이
드문 것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나약하고
나이가 들어 육신이 병들고 나약해져 더욱 불안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전부터 마음의 흔들림을 최소화하고
흔들리고 쓰러져도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각자가 -린이라고 부르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지금 그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거나 수련하려는 분야 일 것이다.
나에게 그 분야는 평정심이다.
그리고 그 분야를 공부한 것도 십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 의지 등에 대해선 린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어른이란, 그런 척하는 것이 느는 어린이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내 젊음을 그리 닦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끊임없이 평온하고 안정된 인간이 되려
그렇지 못한 나를 미워했다.
그래서 고역스러운 직장에서, 나아질 희망이 없는 불안정한 경제사정에서, 이기적인 가족과 인간관계에 놓인 자신을 억지로 부정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것에 흔들리는 자신을 조금 바라보고
괜찮다 다독여주는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억울하지만 무엇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보 같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여전히 인생에서 -린이 사십 대의 내가
이십 대의 -린이인 나에게 무언가 전해줄 수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고,
그건…너의 잘못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