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을 좋아하게 된 이유
보랏빛 저녁을 본 적이 있던가. 두 번의 기억이 있다. 나는 굳어 있었다. 몸과 마음이 수시로 마비될 정도의 응고, 답답함.
한 번은 여름이었다. 볕에서도 비가 내린다는 오뉴월 어느 날, 그 하늘을 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좁은 방,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머니는 언제 돌아오실까. 공부하기 싫었다. 책상에 앉아 백일몽에 빠졌다. 얼마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숨으로 축축해진 공기에 허우적댔다. 창을 열었다. 밖은 보랏빛이었다. 하늘뿐이었을까. 형광등을 켜놓지 않았더라면 내 얼굴도, 손도, 속도 보라로 절여졌으리라. 적푸른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답답함이 혼란으로 묽어졌다. 하마터면 창틀을 억지로 떼어내 밖으로 뛰어내릴 뻔했다.
한 번은 겨울이었다. 조금 더 강렬한 보랏빛 하늘, 군에 있을 때다. 시야의 반을 차지하던 거대한 소금물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아직 세 시간이나 남은 교대시간을 기다렸다. 서서 자는 법을 얼마 전 익혔던 터라, 그렇게 잠이 들었나 보다. 전화가 울렸다. 번쩍 뜨인 눈에 쏟아진 그때의 보랏빛, 그리고 오직 양옆으로 내질러진 수평선. 그제야 그것이 바다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혼란을 씻으려, 바다로 뛰어들었다.
답답함은 언제나 보랏빛으로 묽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빛이 보라임을 상기시키려는 하늘의 의지. 이제는 익숙한 빛이 되어버린 현실의 부동. 태양과 그때의 공기가 작용해 만들어진, 올곧게 내질러진 직사광선의 분리된 형태, 그것은 답답함과 공진하여 융화되었다.
속내가 구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면, 물방물 모양이라면, 각자의 마음속에 심장처럼 자리 잡은 무언가라면, 그것은 보랏빛을 가졌겠지. 답답함-은 굳은 마음의 표면만을 딱딱하게 만들었고 적과 청이 분리된 채 그 안에서 서로 뒤엉키며 보라를 다시 표면으로 밀어냈다. 밖의 공기와 맞닿은 혼란의 표상. 보랏빛은 정반대의 두 색, 적청이 적절하게 섞일 때만 존재했다. 보라가 되지 못해, 적청이 무질서하게 무늬를 이루는 구체의 내부는 나를 끊임없이 고통으로 내몰았다. 이윽고 그 무늬는 나를 죽였을 것이다.
지금, 나는 다시 보랏빛을 만나길 고대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쏟아진 이 빛은 노랑의, 초록의 고통에 절여진 나를 뒤덮으며 다시 구해낼 것이다. 여름과 겨울, 구원의 색이 나를 덮어냈듯, 또 다른 계절에 와 주길. 예상치 못한 시간에 와주어 속내에 까지 닿기를. 그리고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 단단하게 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