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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Jan 01. 2022

천원으로 가득찬 지갑

복권을 사는 이유


나오는 길에 복권을 샀다. 보통 딱 이천원 어치만 산다. 오천 원은 그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많아 부담되고, 천원은 부푼 기대감을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추첨이 완료되는 그 시간에 바로 번호를 확인해 볼 생각이다. 느낌이 왔다. 요 근래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삼일 동안 꿈을 꾸었다. 꿈결에 번호가 문득 스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 ‘자동’으로 샀다.


나는 보통 일주일 뒤인 금요일 당첨 여부를 확인한다. 두근거림을 오래 가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실망하더라도 바로 그다음 날 새로운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한주를 사는 동안, 주머니 속 고이 간직된 미완성 복권은 종종 속을 덜컥 이게 한다. 이 기분이 좋다.


요새는 크게 두근거릴 일이 많지 않다. 일순간에 많은 돈을 가지는 일이 개중 큰 지분을 차지한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이런 설렘을 쫓는 행위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2등도 부족하다. 1등을 원한다. 당첨되면 무얼 할까. 억대의 돈이 찍힌다면 심장이 터져버리지 않을까. 세계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행복에 겨운 걱정에 시달리지 않을까. 부모님에게는 얼마를 드려야 하지, 어떻게 드려야 하지, 수령은 어떻게 기타 등등. 많기도 하다.


요새 들어 큰돈을 들이고 싶은 것이 있다. 공간을 마련하는 것. 주거할 집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 종종 근처 카페에 간다. 빵과 커피를 판매하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장소로 보이지만, 개개의 방도 있고 지하엔 영화를 볼 수 있는 소극장도 있다. 나머지 공간에서 다들 홀로 앉아 무언가 를 읽고 쓴다. 나는 그런 곳을 원한다. 정적이지만 생각이 조화로이 떠돌아다니는 장소. 생각이 그 공간에서 만큼은 밖으로 나와 너 서살 애들처럼 뛰어다닐 수 있는 행복한 공간 말이다.


복권을 산다는 건 굴러올 복이 돈이라고 상정하는 것이기에 멋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돈만을 절실히 바라는 삶이라 치부하고, 종종 그런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많은 돈 없이는 원하는 걸 이루기 힘든 세상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지옥으로 취급되는 곳에서 안심할 거리를 찾는다는 것은 오늘만은 살아내기 위한 그런 몸부림일지도.


설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은 하루를 보낸 것이 아닐까. 멋이 있던 없던, 도덕적이던 아니던 누구나 하나쯤은 품 안에 따듯한 붕어빵 하나는 가지고 다녔으면 한다. 나만 먹을 수 있고 남에게 줄 필요 없는 최후의 양식. 지극히 개인적일라도, 그  무언갈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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