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한 이유 없이 나무를 마르게 한 존재는, 마찬가지로 마땅한 이유 없이 병든 사람을 낫게 합니다. 그 이유의 공백 앞에서 저는 원인을 밝히려는 것, 이유를 찾으려는 것, 그걸 알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어쩌면 교만일 수 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소설을 쓰는 마음가짐과도 관련된 일입니다. 저에게 소설은 ‘왜’라는 질문의 소용돌이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세상의 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소설은 그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저에게 되돌려줍니다. 이유를 묻고 그 답을 찾으려는 간절함만큼이나 답을 모르고 사는 힘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답이 없는 것의 기쁨을 배우라고 합니다.” 숨쉴 틈, <나뭇잎이 마르고, 김멜리> 작가노트
당신의 MBTI는 어떤 유형인가? 당신은 어떤 성격 유형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에 공감하는지 궁금하다. 재미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매우 공감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말도 안 되는 테스트라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듣고 싶은 것, 공감할 부분만 공감한다는 면에서 나는 이 테스트를 ‘사주팔자’를 보는 것과 흐름을 같이한다. 동시에, 사람을 고작 16가지로 분류한다는 것에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면에 대해서도, 나만큼 사람들은 예민하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어떤 유형에 귀속시킨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는 말로도 들리기 때문에, 마냥 ‘성격유형에 귀속된’ 사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여유 없는 인생에, 이렇게나마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어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자신을 들여다보는 용도로 MBTI를 사용한다는 것, 그 외에 타인을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쉬운 방식은 언제나 부작용을 야기한다.
‘체’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를 한 유형의 사람으로 분류하고 차별을 부여해서는 안되었는데, 다행히도, 작중의 이 인물은 본인을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특별한 차이가 없는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타인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놓인 환경이 어떠하든 스스로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타인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다. 그 기대감은 ‘체’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주인공 ‘앙헬’이 가졌던 감정이다. ‘앙헬’은 다양성을 받아 들이고 타인 한 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되는, 해답을 얻었다. 하나의 성격유형으로 분류된, ‘정답’을 선택하지 않았고 해석했다.
해답과 정답. 나는 이 둘의 오묘한 차이를 구별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정답이 필요한 때, 그리고 해답이 필요한 시점.
혼란한 시대에, 수억 가지의 사건과 그에 대한 마무리를 기다리는 우리는 타인이 걸어간 발자국들을 본능적으로 따라가고 싶어 한다. 하나의 크리티컬한 승리카드.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답’의 경로이다. 같거나 비슷한 방식의 해결책들 말이다. 수많은 정답 카드 중 하나만 잘 뽑는다면 사건은 무난하게 해결될 것이라 기대한다. 정답은 언제나 디지털적이다. 비연속적인, 개별로 구별 가능한 카드 중 하나를 뽑을 뿐이다. 서른장의 정답카드 중 8번과 11번을 뽑는다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그런 기대말이다.
그러나 사건은 시작부터가 아날로그적이다. 정량적으로 몇 개의 사건이 (구별 가능할 정도로) 명확히 벌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서로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결 방식 또한 시작부터 얽혀있으니, 구별 가능한 별개의 해결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9번과 10번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답’인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9번과 10번 만을 선택하기에, 무언가 의구심이 든다. 9번과 10번을 경계삼아 소수점에 놓인 ‘9.38’번을 새로 만든다. 새로운 선택지를 하나 늘린 것이다. 이것이 ‘해답’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정답 사이의 또 다른 무한개의 정답들, 그 정답들을 선형적으로 묶은 그것이 해답이다. 자신만의 길을 새로이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디지털은 편리하다. 복잡한 세상을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표현방식으로 번역한다. ‘공식화’를 통해 정답 족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사람은 타인이 터놓은 길 그대로를 따라갈 수 없다. 본능적으로 자신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 만의 독창적인 해결 방식을 선택한다. 우리는 정답을 선택했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자신이 만들어낸 해답을 선택한 것인데도 말이다.
해답을 좇는 존재는 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현명하다. 정답을 선택하든, 해답을 선택하든, 결과가 불만족스럽더라도 본능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일구어내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