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댁 사정이죠. “
누군가가 직장인은 미친 짓이라고, 당장 그만두라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업은 미친 짓이라고, 당장 안정을 되찾으라고 한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거나 모든 것이 정답이 되기를. 각자의 생각이 다름을
’왜 인정하지 못할까?‘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매일 몇 시간을 읽어야 하나요? 누군가는 필사하며 읽으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매일 꾸준하게 읽어야 한다고 한다. 통독, 정독, 발췌독 그리고 기타. 독서법을 찾는 이들 앞에선 말수가 준다.
“소설을 읽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실질적 삶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우리. 독서보다 재밌는 것이 많다고 느끼는, 그리고 ’ 소설이 무엇인지‘ 묻는 독자는 고민한다. 소설의 기능. 그것이 가져다주는 삶의 효용. 문학과 소설 그리고 책에 목숨을 걸었던, 누군가가 알맞게 내린 정의를 살필 뿐이다. 독자는 말한다.
’내 생각에는요.‘
잘 모르겠음, 중간 결론. 그리고 여기 누군가 밖으로 내놓은 이야기가 있다.
‘내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가 있다면,’
삶은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이야기라는 장치 없이는 삶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란 지울 건 지우고 남길 건 남기는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 것이 진실일 수 있는가? 우리에게 불가결한 이야기가 진실의 수단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_ 모든 이야기로부터의 자유, 신형철
핑퐁처럼 오가는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혔을 때 ‘잠깐만 기다려 봐’ 결론을 낸다. 댁의 사정이라곤 해도, 타인이 댁의 진실을 함부로 유추해서는 안 될 텐데. 그런데도 가정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털어내고, 누군가는 받아낸다. 몇 개쯤 땅에 떨어지더라도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바구니에 담긴 것. 소설뿐이 아니라, 이야기의 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