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올림픽이 한창인 지금, 인스타그램에는 수많은 글이 올라온다. 글을 올리는 주체는 각 나라의 공식 대표 계정인데, 보통은 'Olympic_나라이름'의 방식을 사용한다. 'Olympic_JAPAN' 'Olympic_CANADA'와 같은 형식으로 말이다. 개중 깔끔하게 'Olympic'만을 사용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응당 'Olympic_KOREA'를 사용하는 것이 알맞을 것 같은데 기어코 'Olympic'이라는 계정을 대한민국이 선점한 것이다. '역시 대한민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타국과는 다른 포인트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이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귀한 아이디를 누구보다 먼저 '찜'해 놓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색이 아닌가 싶다. 위 같은 글이 진실이건, 아니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점에 집착한다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국제 올림픽 공식 계정의 이름은 'Olympics'라고 한다.)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을 때 별명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정해준. 이름 세 글자를 그대로 쓰기는 부담이다. 고민 끝에 그럴듯한 별명을 생각해내도, '중복!'이라는 경고문이 눈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 사태를 겪은 후 결국 사용하는 것은, 예전부터 죽 사용해오던 재미없는 별명이었다. '정해준12'라던지, 'wjdgowns12'와 같은 것들이다.
결국 이런 재미없는 별명을 바꾸게 되었다.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온라인 계정 아이디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그날도 역시 별명을 설정하는데 골머리가 썩던 날이었는데, 오래 기억들이 스쳐나갔다.
학창 시절부터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다. 정'해'준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별명엔 항상 '해'라는 문자가 들어갔다. '해롱이' '헤로인' 기타 등등. 많기도 하다. 개중 가장 어이없었던 별명은 '정해이즐넛카페'였는데, 당시에 티브에광고에 나왔던 시엠송이 아닌 듯싶다. 놀림을 좋아하던 친구가 알 수 없는 멜로디를 섞어 매번 부르던 바람에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아무튼, 이따위 것들을 온라인 아이디로 쓸 수는 없으니 한창 고민하던 찰나, 'Heyjude'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던, 눈이 푸른 친구들, 단 한 번밖에 만난 적 없던 친구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홀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를 다니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사실은 독립생활에 고독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 내가 무엇이라도 된 마냥 용기가 생겼다. 그 용기를 방패 삼아 여러 외국인 친구들에게 말을 붙이곤 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나의 말도 안 되는 영어를 곧잘 받아주던 사람이 있었다. '티키타카'가 잘되던 사람이었다. 그 대만 친구는 신기하게도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고, 일본에 잠깐 혼자 놀러 왔다고 했다. 다음날에 다시 만난 그 친구는 푸른 눈의 캐나다 친구를 데리고 왔고 함께 곳곳을 놀러 다녔다. 그리고 그날, 나는 여행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귀국했다. 아쉬운 마음에 번호를 교환했다. 그들을 다시 만난 건 17년 종로. 푸른 눈의 친구는 또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다들 그날 취했고, 나는 그들에게 Heyjude라는 익숙한 형태의 별명을 하사 받았다. 학창 시절과 비슷하게 이름 가지고 장난을 한 것이다. 영국의 비틀즈, 그들이 남긴 명곡의 제목이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에 들었다. 얼큰하게 취한 6명은 비틀즈의 노래를 그 자리에서 함께 불렀다. 'Hey Jude, Don't make it bad'
그 날이후로 뜸해진 연락은 우리를 각자의 자리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노래를 부르던 몇 분의 시간만이 기억에 진하게 남았다. 'HeyJude". 이 노래를 아이디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행복한 기억을 온라인상의 나의 정체로 둔다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21년의 내가 주로 사용하는 별명이 되었고, 새로 만드는 모든 아이디는 이것으로 통일되었다. 기억의 조각이 내 정체 중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것이 'Heyjude'의 기원이다.
지금의 당신을 형성하는 것은 쌓아온 당신만의 기억인가, 아니면 수많은 타인의 색으로 뒤섞인 존재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나의 기억 속에는 항상 타인이 있다. 자신만이 우선인 세상에서, 타인으로 물들여진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된 믿음을 준다. 지금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