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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eong Jul 30. 2021

우리는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서평]천 개의 파랑


촉촉했다. 높은 해상도에 코끝이 찡했고, 다양한 주제에 머리가 즐거웠다. 이 소설이 마음에 든다. 장르와 관련 없는 감동을 받았다. 비록 SF라 하더라도 소설이 품은 내용은, 과학, 기술발전 등과는 거리감이 있다. 배경 소개를 위한 하나의 요소일 뿐, 나는 이 소설을 여타 현실주의 소설과 비슷하게 받아들였다.



줄거리


로봇이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 그 배경에서 살고 있는 세 모녀의 삶. 건조한 세 모녀의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기수 로봇. 그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작은 사건은 그들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공상과학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그것이 굵직한 메시지를 주거나, 치명적인 교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SF 소설 장르 특성상, 사건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표현한 그 ‘소박한 근미래의 삶’은 오히려 지금의 삶과 비슷한 궤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들이 놓인 배경, 로봇과의 공생이라는 주제가 현실과 그저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지금의 스마트폰의 보급화처럼 말이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이점을 넘긴 시기에서는 새로운 기술과의 삶(로봇과의 공생 등)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당연해지는 시기는 반드시 온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머지않아 겪게 될 일이다.


물론, 편의점에서 로봇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등, 로봇의 등장으로 인해 피해를 겪는 상황은 묘사된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간접적이다. 로봇이 사람을 해하거나,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의 직접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간접성은 인간의 ‘인간적인’ 갈등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내가 이 소설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는 갈등을 의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시하는 사소함은 갈등을 유발한다.


다른 수험생들의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경의 방식은 ‘방목’이었다. 숨통을 조이는 순간 분명 어느 한 곳이 짓무르기 시작할 거라고 믿었다.
보경은 흔쾌히, 아무 문제없다는 듯 은혜의 자퇴를 허락했지만 그게 보경의 연기였다는 건 은혜도 알고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를 묻지 못해, 보경의 상상이 커져만 가는걸, 그리고 그 상상의 형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은혜는 먼저 이유를 말해주는 배려를 베풀지 않았다.”


로봇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부각된다. 현시대에서 인간이 겪는 ‘인간적인 갈등’은 근미래에서도 여전했다. 특히, 새로운 시대의 환경적 고통이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발전되는 과정이 연출되었다.


지금도 빈번한, 고질적인 부모와 자식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깊게 스며든 서운함에 서로는 갈등을 겪는다. 원인을 알 수 없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대화의 부재’였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유일하게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들 개개의 속마음이 아닌 표면적인 것뿐이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묻지 않았고, 알 수 없는 갈등을 심화시키지 않기 위해 회피했다. 결국 내면에서 썩어버렸다. 이러저러한 사소함이 쌓여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꼬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안쪽에서부터 발생되는 사소함을 귀찮음으로 무시한 결과였다.


보경은 콜리에게 사사로운 것까지 내뱉은 자신의 말을 후회했는데, 그때 거부감이 한 꺼풀 벗겨졌다는 것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콜리는 보았다. 자신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냈다며 말을 무르는 보경의 표정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소량의 편안함을 발견했다. 콜리는 이를 통해 한 가지 방법을 습득했다. 대화다. 대화를 많이 할수록 보경에게 깔려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표피같이 얇게 한 꺼풀씩 벗겨졌다.


그들에게 등장한 로봇은 대화를 위한 매개로써 역할을 다한다. 그들에게 우연히 주어진 사소한 계기는 대화의 물꼬를 트고, 속마음을 수면 위로 건져 올렸다. 드러난 내면은 그들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아닌 존재는 그들에게 끊임없는 귀찮음을 주었고, 그 귀찮음은 사소함으로, 사소함은 갈등 해결을 위한 발화점이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작은 사건은 삶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작은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어떤 사소함을 무시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어떤 사소함으로 영감을 얻어 살아가는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보경과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요. 거기서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 거냐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게 소중한 사람의 순위를 매길 때 사용되던데… 왜 꼭 절망의 상황에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누구에게 먼저 줄 거냐는 비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콜리’는 목적에 어긋난 로봇이다. 경마 기수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우연한 사건을 통해 다른 목적을 위한 존재로 태어난다. 인간도, 기계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사건이었다. 애매한 경계에 놓인 ‘콜리’는 ‘연재’에 의해 평범한 인간의 삶으로 들어온다. ‘콜리’의 사고는 어린아이의 마음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을 밖으로 표출했고, 이는 ‘연재’의 가족에게 그간 잊혔던 순수한 감정을 전파했다.


존재는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다. 특히, 인간에게서 만들어진 존재는 특히 그 목적이 분명하다. 어떠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시간을 ‘살아간다’. 그것이 선이냐 악이냐 하는 문제는 존재가 태어남과 동시에 부여된 과제이다.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 등장한 ‘로봇’은 선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인간의 편의와 안정을 위해 좋은 뜻에서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그 형태는 창조된 목적에 알맞지 않더라도, 결국 선을 향한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쁜 의도로 만들어져, 인간과 그 주변을 파멸로 몰고 가는 공상과학 소재가 너무 많아, 피로감을 느꼈다. 인간에 의해 창조된 존재가 순수한 선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다른 공상과학소설과 다른,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서평 에필로그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언제 써놨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나 이 문구를 보며 지구가 변해가는 속도와 놓치고 가는 사람, 그리고 동식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천 개의 파랑’을 썼다.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작가노트>


소설을 마치며, 작가는 소설을 쓰게 된 목적에 대해 소개했다. 자신의 레일 위를 빠르게 달려야 하는 경주마에게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소설 속 한 장면처럼, 빠르게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천천히 달린다는 것은 주변인들에게 비판받는 것을 포함하여, 온갖 어려움을 감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걸어갈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칭찬하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부여함으로써 '사는 것'의 올바른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느긋한 인생도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은 거대한 물살에 휘말려 질식할 가능성이 높다. 물에 떠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듯, 느긋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보다 더 느린 걸음걸이를 가져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드라마틱 한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하나의 예상된 사례를 통해,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살아온 날들에게서 얻게 된 여러 감정들을 쪼개, 해석할 기회를 주었다. 미래상을 표현한 책이지만 그것보다는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읽기 쉽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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