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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Mar 23. 2020

지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상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세 가지 방법

세 번째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다. 빌라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생긴 변화 중 가장 귀찮은 일은 ‘분리수거’다. 이전에는 재활용품 쓰레기를 매일 내놓을 수 있었는데, 아파트는 지정요일의 지정시간에만 버릴 수 있다. 매주 수북하게 쌓인 재활용품 쓰레기를 버리다 보면, 일주일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쓰고 버리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매일매일 버릴 때는 많은 줄도 몰랐던 페트병, 포장 용기 등을 매주 버리다 보면 양심의 가책 보다도 귀찮아서라도 쓰레기를 줄여야지 싶었다. 이런 결심을 서서히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중 세 가지 변화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첫 번째로 햇반을 떠나보냈다. 독립 생활인의 벗, 햇반이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고, 심지어 맛있다. 쌀을 씻고, 불리고, 밥을 하고, 기다리는 귀찮은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언제든지 마법처럼 밥이 되어 나오는 햇반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전기밥솥을 치운 지 오래였다. 매일 쌀밥을 먹는 것도 아니니 햇반을 박스채로 놓고 사는 게 더 편했다. 하지만 매주 똑같이 생긴 햇반 용기를 몇 개씩 버리는 건 그만두고 싶어졌다. 전기밥솥계의 캐딜락, 말하는 쿠쿠를 다시 주방으로 모셔왔다. 쌀도 가격이 조금 있지만, 맛있다는 경기미를 샀다. 햇반 용기처럼 생긴 전자레인지용 냉동밥 용기도 구했다. 몇 주에 한 번씩 소리를 내어 맛있는 백미 취사를 시작하는 쿠쿠와 함께 냉동밥 용기 10개를 채운다. 햇반 한 개는 남길 때가 많아서 항상 작은 공기 사이즈를 사곤 했는데, 냉동밥 용기에는 내가 원하는 만큼 밥을 넣을 수 있어서 좋다. 쿠쿠와 경기미와 함께라면 햇반보다도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두 번째, 생수도 그만 사 마시기로 했다. 변명하자면, 나는 물을 정말 안 마셔서 2리터짜리 생수 한 병으로도 한참을 마실 수 있었는데... 어쨌든 주기적으로 플라스틱을 버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생수를 한편에 쌓아두고 마시고, 버리는 건 정말 편리한 일이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물을 끓여 마실 것인가? 아니다. 보리차는 맛있지만 그건 너무 귀찮아서 생수로 언제 돌아가게 될지 모르다. 정수기를 렌털 할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물을 잘 안 마시는데... 돈도 아깝고 번거로웠다. 고심 끝에 간편한 정수기, 브리타 정수기를 샀다. (사이즈가 다양한데, 2.4L 짜리 마렐라 쿨로 결정했다.) 브리타 정수기는 필터가 들어있는 물통에 수돗물만 받으면 된다. 필터를 주기적으로 갈아야 하는 게 좀 귀찮지만, 아직까지는 감내할 수 있는 귀찮음이다. 문제는 물이 입맛에 맞냐는 건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 먹는 생수가 더 맛있다. 브리타 정수기를 냉장고에 넣어두면 냉장고 냄새 같은 게 물에 배는 것 같기도 하고... 물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정말 미묘한 차이라, 필터를 주문하는 게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이상 계속 이용할 생각이다. 필터를 교체할 때마다 개운하게 물통을 세척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물을 좀 자주 마셔야겠다. '인간의 몸의 70%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정말 그렇게 많은 공급이 필요할까?' 이런 의심을 버리고 자주 마시겠습니다...


세 번째로 그만 사기로 한건 일회용 테이크아웃 컵이다. 매일 아침 회사에서 커피를 살 때, 텀블러를 쓰기 시작했다. 이 결심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상당 부분 카페의 할인 정책에서 시작했다. 나는 거의 매일 아이스 라테를 사는데, 텀블러를 가져오면 200원을 깎아준다는 게 아닌가. 자본주의의 노예로서 매일 텀블러를 지참하여 가계에 소박한 도움을 주고, 일회용 컵을 줄이는 실천을 할 수 있게 됐다. 버려지는 일회용 컵을 줄이는 효과는 분명했으나, 문제는 설거지였다. 회사 싱크대에 개인 수세미를 두고 쓰기가 마땅치 않아서, 결국 일회용 수세미 롤형을 사고 말았다. 이걸 두고 조삼모사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일회용 수세미 한 장을 세장으로 잘라서 영원히 쓸 작정이라고 다짐해 보며... 커피를 마신다.


Photo by Emre Gencer on Unsplash


그리고 아직 해보진 않았지만, 하려고 하는 건 샴푸 린스 대신 비누를 사용하는 거다. 지금 쓰고 있는 샴푸와 린스를 다 쓰면, ‘동구밭 비누’를 쓸 예정이다. 동구밭은 발달 장애인과 함께 하는 비누 브랜드인데, 디자인이 예뻐서 관심을 갖게 됐다. 샴푸와 린스 대체품으로 한번 써봐야지 하고 장바구니에 넣어 뒀는데, 결혼식에 갔다가 우연히 답례품으로 동구밭 비누 세트를 받았다. 코로나 시대의 결혼식은 위험천만한 뷔페 식사를 하는 대신 신랑 신부가 준비한 답례품을 받아 온다. 답례품을 받게 될 줄도 몰랐지만, 마침 비누 세트를 받을 엄청난 확률은...! 선물로 받은 세트에는 설거지 비누까지 들어 있다. 우리집에 현존하는 샴푸, 린스, 주방 세제의 소멸을 기다리며 괜찮다면 앞으로는 비누로 설거지와 샤워를 해 볼 생각이다.


여전히 이런저런 일회용품을 많이 쓰고, 이 모든 일도 오직 지구를 위한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조금씩 지구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 볼 생각이다. ‘제로 웨이스트’ 까진 아니지만 ‘레스 웨이스트’의 방식으로 미래의 어른이 될 어린이들과 남극의 펭귄들에게 빚을 아주 조금 갚고 싶다.



'혼자 살기 실전편'을 이어 써나가려고 한다. 이태원, 연신내에 이어 지금 살고 있는 세 번째 집에서의 생활을 기록할 예정. 연습은 없다, 오직 실전만 계속되는 독립 생활기. 언젠가 실전에서 허둥대지 않는 고수가 되는 날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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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_ju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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