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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Mar 25. 2020

집을 샀다

집을 샀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엄청난 고백이어서는 아니고, 나 자신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그런 결심을 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살고 있던 전셋집을 매우 사랑했고, ‘대출’이라는 걸 용기 내어 받은 내가 자랑스러웠다. 빚이 생기면 경찰이라도 집에 들이닥치는 줄 알던 애송이 사회 초년생 시절을 지나 드디어 안정적인 시기에 이르렀다는 후한 평가도 스스로 내렸다. 두 번째 전셋집에서 살 때까지도 ‘집을 산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집을 ‘산다’와 ‘안 산다’ 사이를 오가며 고민을 하려면 ‘집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전제 조건으로 있어야 한다. 친한 친구 S가 혼자서 집을, 그것도 아파트를 산다고 했을 때 놀랐다. 많은 친구들이 결혼하면서 집을 구한 얘기를 아마 나에게 수도 없이 했을 텐데, 혼자 사는 친한 친구가 아파트를 산다고 하자 그제야 ‘집을 산다’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집을... 산다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지만, 친구가 집을 산다고 따라서 집을 살 정도의 재력과 결단력은 없었다. 다만, ‘집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내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사실을 주변에 고백하자마자 내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부동산 월드가 펼쳐졌다. 알고 보니 세상 사람들이 나만 빼고(!) 모두 부동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인 C는 회사 근처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고(내가 듣고도 잊었을지 모르겠지만, 몰랐던 사실이다), 일로 자주 만나던 분은 최근 재개발 지역에 빌라를 구입했고(그분도 꽤 오랫동안 집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하셨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도 모이면 부동산 이야기를 주로 했으며(그동안 나는 부동산 키워드가 들어 있으면 자동 차단되는 필터라도 가동한 걸까), 가족들도 서울 시내 부동산 시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들 감쪽같이 나만 못 듣게 부동산 이야기를 했던... 건 당연히 아니고, 재테크, 부동산, 금융에 무지하고 관심 없던 나에겐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나 다름없었던 거였다.


Photo by Sarah Lee on Unsplash


집을 살 수도 있고, 안 살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는 세계에 진입하자, 정말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졌다. 그중 어느 정보에 결정적으로 마음이 흔들렸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나처럼 거의 집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30대의 절반 이상이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를 봤던 때인지, 전세에 계속 사는 게 어떻게 집을 사는 것보다 손해일 수밖에 없는지 수치가 입력된 엑셀 그래프로 설명을 들었던 때인지, 부동산에 일찍 눈을 뜬 친구 C가 회사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대출받으려고 다니는 곳이라고 설파했을 때인지, 혼자 살 거면 그래도 서울에 집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다정한 염려를 들었던 때인지...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지금 집을 사야 한다’고 했다. ‘아, 그럼 집을 알아(만) 볼까’라고 결심하자마자 운이 좋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부동산도 소개해주고, 동네도 소개해주고, 은행 다니는 사촌 오빠까지 소개해줬다. ‘집을 알아나 볼까, 사는 건 나중에 해도 되고..’라고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어느새 퇴근 후 아파트 매물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생각이 결심으로 바뀌고, 정말 집을 구하기까지는 몇 주가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회사에서는 멀지만 대출의 부담이 적고, 크게 오르진 않겠지만 애초에 금액이 적어 떨어질 일도 없고, 크고 오래된 나무가 가득한 낡고 작은 복도식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다.


아파트를 알아보러 다니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은 왜 진작 집을 사는 걸 알아보지 않았냐는 말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대출 조건도 더 좋고, 집 값도 훨씬 쌌다는데... 글쎄,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집을 사는 일은 인생에 없는 세계관이라는 게 있었다는 걸. 주택 담보 대출이 뭔지, 청약 점수가 몇 점인지도 모르던 내가 얼렁뚱땅 집주인이 되기까지의 일을 좀 더 써보려고 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 반가웠던 유튜브 채널을 소개한다. 

‘1인 2 묘 가구’ - 30대 비혼 여성의 내 집 마련 분투기 


https://youtu.be/7IG3f_gJF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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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_jun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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