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정 Mar 27. 2020

money, money, money

자, 이제 집을 보러 다녀볼까. 살고 싶은 집이야 분명했다. 회사에서 가깝고, 대중교통도 편리하고, 주변 환경도 깨끗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옆에 공원도 있으면 좋겠고, 가격은 내가 살 땐 싸지만 내가 사고 나서 많이 오르면 좋겠고... 원하는 조건은 백가지도 더 댈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가격이 정해준다. 전셋집을 보러 다닐 때도, ‘집값이라는 건 과학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동네여도 비싼 집은 이유가 있었고, 같은 건물이어도 층마다 가격이 달랐다. 집을 빌릴 때도 그런데, 사는 건 오죽하겠나. 서울 내의 집값은 이미 다 정해져 있어서, 부동산에 매물을 처음 보러 가는 나 같은 사람이 진흙 속에 숨겨져 있는 진주를 우연히 발견할 확률 같은 건 없다. 그러니, 문제는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인데...


물건을 사러 갈 때, 가게 주인이 나보고 얼마나 가지고 있냐고는 묻지 않지 않나. 부동산은 매물을 보려고 하면, 예산이 얼마인지 묻는다. 당연히 내가 가진 예산에 제일 좋은 옵션을 제시하고 싶어서일 거다. 하지만 나는 아니, 어떻게 처음 보는 사이에 제 전재산을 물어보실 수 있죠... 하는 당혹감에 대충 얼버무렸다. 주변에 도움을 주려는 지인들도 예산을 물었다. 아니, 우리가 친한 사이긴 하지만 이렇게 카톡으로 전재산을 고백해야 하는 건 좀... 돈 이야기를 어려워하는 이 마음은 내가 유교걸이라서일까. 나는 선비도 양반도 아닌 21세기 인간인데도, 돈 이야기를 하는 건 식은땀이 났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나도 내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예산’이란 집을 살 수 있게 최대한 마련할 수 있는 돈을 의미하는데, 그러려면 은행에서 나에게 도대체 얼마나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돈을 얼마나 벌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부끄럽지만 가계부를 한 번도 안 써본 나는 이 부분도 어려웠는데, 나중에 따로 글을 쓰려고 한다.) 여러 번 예산에 대해 얼버무리고 대강 예상하는 금액만 말하다가, 부정확한 예산으로는 나도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짐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비장하게 은행에 찾아갔다. 전셋집을 구할 때는 최소한의 대출만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최선을 다했을 때의 ‘전 재산’을 파악하러 간 건 처음이었다. 은행에서마저 나에게 요새는 부동산 규제가 심해졌는데, 왜 이전에 집을 사지 않았냐고 안타깝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저는 지금 ‘집을 살 수도 있는’ 세계에 막 도착한 거라고요.라고 길게 설명할 수 없어 그러게요...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 갔던 은행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도 대출을 알아봤다. 대출을 알아보고 나서는 두 번째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였다. 전세 대출도 빚이 생기면 드라마처럼 사람들이 쳐들어 오는 줄 알던 내가 내디딘 큰 한걸음이었는데, 이건 커도 너무 큰 한걸음이었다. 그래, 대출을 한다고 치자. 이걸 갚으려면 영원히 회사에 다녀야 할 텐데,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내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나도 모르는 거잖아. 그동안 어떤 ‘무슨 일’ 없이 꾸준히 일 해온 나 자신을 알면서도, 대출을 생각하면 정체 모를 위험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몰려온다 몰려와... 그게 뭔진 나도 모르지만


부동산 고수(?)들은 이런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내가 빌릴 수 있는 돈의 맥시멈을 빌려서 투자를 해야, 하이 리턴으로 돌아온다는 거였는데 그건 어느 그래프를 봐도 이성적인 설명이었다. 하지만, 내 가슴 위에 얹힌 이 돌덩이와 내 머리 위에서만 비를 뿌리고 있는 이 먹구름은? 어차피 나는 집을 갖고 싶은 거지 부동산 투자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닌데, 이 정도 정신적인 부담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런 심리적인 불안에 대해 호소하면, 네가 그런 위험에 혹시라도 처하게 되면 다시 집을 팔면 된다고 했다. 이것도 얼마나 이성적인 설명인가. 머리로는 다른 사람들 말이 다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생처음 부동산 월드에 발을 들인 나는 침대에 누워 내가 갚아야 할 빚을 생각하노라면 혼자서 외줄을 타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이게 줄이 아니라 다리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너무 얇은걸?  


이 작은 마음의 인간이 어떤 결정을 했을지는, 아마 다 눈치챘겠지만... 밤마다 잠을 못 이룰 정도의 대출은 받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대출에 대한 부담을 줄여서 내가 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초기의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멀어지고, 친구들 집과도 멀어지고,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의 꿈에서도 멀어졌지만... 결정했을 때의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당장 신용불량자행 특급열차를 타는 기분에서 벗어나 집주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청약에 당첨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나는 뒤늦게 20대에 만들어둔 청약통장을 확인해 청약 점수를 계산해봤는데, 터무니없이 낮았다. '돈 많은 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듣똑라의 유튜브 채널 WONEY는 청약부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설명해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Wz4ch691N8&t=122s 


+

@around_june_     

매거진의 이전글 집을 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