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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Jul 16. 2021

30살이면 아이를 낳아도 되는 줄 알았다.

마음 그릇이 간장종지 보다 작은 나에게,


30대 후반인 지금의 내 시절을 생각해보면,

대학을 가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월급을 타면 꼬박꼬박 적금을 넣고, 

결혼자금을 마련하여, 28살에는 꼭 결혼해야지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20살부터 연애를 시작해

둘 다 형편이 좋지 않아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내 집을 마련하면 아이를 낳자 생각하고

둘이서 열심히 모아 집을 마련하고 30에 아이를 가지고 31살에 아이를 낳았다. 결혼 전엔

모든 미혼의 여성이 꿈꾸듯 사랑하는 사람과  침대에 누워서 눈뜨면 옆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상황은 그게 아니더라도 결혼하면 연예와 별반 없는 삶이 지속되리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다 내상상처럼 흘러갈 리 없지 않은가.

 결혼과 동시에 내 삶은 더 피곤하게 흘러갔다.


남과 비교하며 나이에 맞춰 급하게 했던 결혼이 문제였을까?

결혼 전에는 정말 몰랐던 일들이 내 마음속에서 요동치며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너무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도 비교의 연속이고,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됐던 생활에 나는 안중에도 없고 매번 신랑을 챙기라며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고,

마침 애들은 왜 시누와 같은 해에 낳았는지,

끝없는 비교 속에 나를 옭아매던 시어머니의 폭격 속에서 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17년 만에 해방되어 자리를 찾아가던 참에 또 일이 터졌다.







첫아이는 내가 몰라서 그런 셈 치나, 갑자기 6살 된 둘째 딸이 '친구들도 나랑 아무도 안 놀아 주는데 엄마마저 나랑 안 놀아주면 나는 누구랑 놀란 말이야!'

머릿속이 또다시 어지러워졌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일로 선생님들께 전화하고 해결하는 과정 중 또 한 번 나의 나약함을 깨달았다.


'그래, 나는 나이만 먹었지 아직 어린애구나.'

둘째 딸과 동갑인 아이 하나가 내 마음속에 같이 살고 있구나.


작은말 한마디에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해결보다는 숨고 싶고, 없었던 일처럼 돌아가고 싶고, 자책하고. 후회하고... 마음 그릇이 간장종지보다 작아서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마다 어쩜 이렇게 잘 놀래고, 상처 받고, 도망가서 숨고 싶고, 이런 내가 아이를 낳았다니...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려고 책도 많이 보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의 인생은  늘 예기치 않은 사건의 연속이라는 사실이 벌써부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각오했던 일과는 차원이 다르게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어른들 말도 거짓말이고,

티브이 속 편하기만 한 가정도 모를 일이고,

SNS와 블로그 속의 육아는 대부분이 허구이며,

무지해서 거기에 속은 나는 바보다.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낳지 않았다면 내 내면이 이렇게 성숙되지 않았을 테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옹졸하고 무지했을 테니,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내적으로 조금만 더 성숙되었을 때 가졌다면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 더 기쁘지 않았을까?

그 기운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어제 딩크족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는 아이를 키울 그릇이 안되고 형편도 안된다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일찍이 선언한 친구였다.

예전에는 '그게 맞나?'라며 친구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했었던 적이 많았지만 이만큼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니

오히려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 너의 결정이 신의 한 수였다."라고 말해버렸다.


아이가 있다는 것이 고통만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느껴보지 못할 행복한 일들도 매일매일 아주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그릇을 잘 판단하여 시기를 선택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 

나같이 마음 그릇 작은 사람의 생각이다.


내 삶의 마무리는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될 거고,

앞으로 남은 과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늘보다 내일은 덜 후회하며 살도록 노력하는 일뿐이겠지만,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요동 치는 건 지금과는 다른 마음 크기를 가져야 한다는 신호가 아닐까?

이제 그 신호에 답을 할 때 인가보다.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서 되도록 위험은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미리 알 수 없으며 우리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저 모르는 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엄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김경림 /메이븐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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