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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Dec 08. 2022

마흔의 인간관계에 관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나와는 다르게 정적이며 자신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확고한 성격 탓에 오랜 시간을 봐 왔지만 편안함보다는 답답함이 가득해 만날 때마다 아쉬움이 밀려오는 친구다. '유연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친구는 해마다 가족들과 함께 바다가 가까이 있는 우리 집에서 2박 3일을 머물다 간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 없듯 이번 만남에도 이 친구는 어김없이 아이, 신랑, 그리고 오랜 친구인 나와의 관계에서 조차 자신의 확고한 주관으로 상황들을 대했다. 그래서인지 친구와 함께 있는 2박 3일 동안은 행여 트집이 잡힐세라 조심스레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번에도 작년과 다름없이 친구의 눈치를 살피는 나를 의식하자 전에 없이 고약한 기분이 들었다. 일상에서 사소하게 해냈던 내 행동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신경이 쓰이고 불편해지는 내 모습을 보니 바짝 약이 오르기도 했다.(그럼에도 친구의 예리함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완벽한 육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그 친구는 올해도 소리 없이 다가와 나와 아이에 대해 끊임없이 지적과 평가를 내렸다.


그 때문인지 매해 그 친구가 함께 하는 날에는 유독 큰 아이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상과 벌이 확실해 성격이 좋은 둘째 아이에겐 끝없는 칭찬을 해주었고, 자기 남편과는 다른 내 남편에게도 '역시 멋져'라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가 누가 옳고 그른 것인지 상황을 흐릿하게 만드는 데는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엄지 하나로 본인만 빼고 모두를 괴롭힌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이따금씩 흘린 칭찬을 통해 모든 상황을 모호하게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이끌어 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왜 항상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지..) 말하면 속좁아 보이고 참으면 답답한 심리를 잘 이용하는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또 소리 없이 상처를 주고는 이내 칭찬했다. 나의 내면 깊숙이 감춰놓았던 우월감을 맛보게 만들어 나를 꼼짝달싹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신기술을 선보이던 친구는 함께 있는 2박 3일 동안 자신만의 레시피로 우리 가족과 본인의 가족들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주인이 명확했던 친구의 화살은 나와 내 아이의 가슴에  후유증을 남겨 놓았다. "우리 아이는 왜 그럴까?" "나의 방식이 잘못되었던 건가?"라며 나의 육아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만들기도 했고 큰아이와의 관계는 그대로 틀어져 몇 주가 흐른 뒤에야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상벌 교육의 결과로 생기는 것은 "칭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벌주는 사람이 없으면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등과 같은 잘못된 양식일세.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타인의 평가에만 신경을 기울이면, 끝내는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된다네. 인정받길을 바란 나머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게 되지. 즉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거라네.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인플루엔셜>


친구를 보낸 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무엇하나 부러운 게 없는 듯한 친구의 당당함이 궁금해졌다. 상벌 욕구가 강한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인 남매를 키우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 우선인 우리 아이들과는 다르게 친구의 아이들은 그 친구의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옮겨낸 듯 모든 것을 스스로 완벽하게 해냈다. 사소한 생활 습관부터 공부까지, 멀리 놀러 와서도 큰소리 한번 낼일 없이 척척 해내던 모습들이 재빠르게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이를 낳고 나니 본디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나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엄마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다 보니 자신감이 차고 넘쳐 나에게까지 흘러들어온 것만 같았다. 이렇듯 친구의 자존감을 극대화시킨 것은 아이들 덕분이리라. 그 와중에 신랑과의 사이는 매년 악화되는 것이 보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특이하기도 했고, 오로지 '아이들을 똑 부러지게 잘 키우는 나'이외에는 모든 세상이 잿빛인 듯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떼 한번 쓰지 않는 아이들의 의젓함을 지켜보며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도(못하는 거겠지만) 내심 안타까웠다. 아이들을 통해 자신을 보는 듯한 친구의 모습에 간혹 '너무 애만 보지 말고 너만의 인생도 찾아봐'라고 흘리듯 이야기하곤 했지만 혀를 끌끌 차며 완고하게 막아내던 말들이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매일 보는 거울 속에는 있어야 할 자신이 아닌 두 아이만 있는 것 같았고, 친구는 자신의 거울 속에 비친 아이의 얼굴을 보며 울고,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친구는 내 모습이 참 답답해 이런저런 참견을 했겠지만 나의 눈엔 자기만의 울타리를 단단하게 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더 숨 막히듯 답답해 보였다.




늘 하는 말이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이들은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결핍 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특히 아이들에게만은 무조건적인 편이다. 좋고 싫음에 있어서 크게 조건이 붙은 것은 싫다. '네가 이걸 잘해서' '네가 이걸 못해서'라는 조건이 붙기 시작한다면 그 조건을 충족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쓰임과 필요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의 쓰임과 필요를 드러내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없이 불행과 가까워지리라. '인정 욕구'라는 불한당 같은 놈 때문에 자연스러운 행동도, 내가 느끼는 순간의 감정도,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는 인생의 여러 갈래의 길조차 고행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나는 이러이러한 조건이 붙는 사랑이 너무나 슬픈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순간 며칠 전까지도 원하는 무언가를 해주어야만 "아이고 우리 딸"하고 좋아했던 엄마의 얼굴이 스쳐갔다. 내가 못마땅한 일을 저질렀다고 상상을 하니 눈을 흘기며 욕을 해대던 과거의 엄마 표정과 함께.


그렇게 아이와 나에게 화살을 돌리며 괴로워하던 시기가 길어졌다. 함께 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깊이깊이 고민했다. 수없이 많은 밤들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덧 우리의 관계는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들어간 신발 속 작은 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신발을 벗어서 빼낼 만큼 큰 크기는 아니지만 뛰어놀다 보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딱 그쯤의 관계였다. 20년.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아슬아슬한 관계를 붙잡고 있었던 것일까. 여러 생각들이 피어오르자 마음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 것일까? 멀리서 온 손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친구와 친구의 가족들만의 안위를 살피느라 나와 우리 가족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잠잠했던 심장이 요동을 쳤다. 우리 집에 와있던 그 친구가 부리는 이유 없는 심술에 대한 눈치를 나와 내 가족들이 볼 필요가 없었다. 성가시도록 까다롭게 구는 동안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주변의 파도에 중심도 없이 흔들리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내 고삐를 손수 쥐어주고 나의 길을 걷게 했던 것일까? 마흔이 가까운 나이를 살면서 그동안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맡겨진 나의 수많은 날들이 있었겠다 싶으니 어리석은 나에게 화가 치밀기도 하고, 또 다른 면에서는 억울하기까지도 했다. 그동안의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런 바보 멍청이 같으니.. ' 예전과는 달라진 나는 이번만큼만은 그 말도 안 되는 지적을 그냥 넘기기 싫어졌다. 아니 앞으로 달라질 내 삶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냥 넘기면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날마다 바다로 향해 조금씩, 아주 서서히 마음을 비워냈다. 이 또한 나를 되돌아보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과거가 아닌 지금의 나와 당당히 마주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쉬지 않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를 끊임없이 하겠노라고 다독이며 또 위로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소중히 살아나가기로 스스로에게 약속도 했다. "두 사람이 있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있게 되고, 60억의 사람이 있으면 60억 개의 세상이 있다"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해줄 말을 고민했다.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 감정적인 대응으로 본질이 흐려질 것 같아 통화 대신 긴 문자를 보냈다. 이번만큼은 나도 그 친구와 같은 공범자였다. 친구가 평소에 나를 보던 그 의심의 눈빛처럼 나도 한 번쯤은 명확히 그어놓은 그 친구의 선을 넘어 침범하고 싶었다.


"친구야 네 생각이 모두 다 맞는 것은 아니야. 다양한 상황과 생각들을 타인의 방식으로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살았으면 해. 매 순간 너의 지금의 위치를 지켜내려고만 생각하고 절제하느라 순간의 즐거움이나 행복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한 번쯤은 되돌아봤으면 좋겠어"


이렇게 20년간의 관계가 깨끗이 정리되었다. 답장은 기대할 수가 없었고, 길었던 세월이 몇 줄로 정리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지만 헤어짐에 있어 '고작 이 정도의 서운함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니 관계에서 맛볼 수 있는 일상의 행복 또한 작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더불어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어영부영 이 관계를 유지했을까'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도 깊어졌다. 아마 관계의 깊이보다는 지내온 횟수와 그나마 남아있는 친구의 수를 헤아렸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오래된 친구 수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내심 아쉽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내면은 더 단단해졌다고 믿기로 했다. 이 친구는 내 인생에서 잠시 스쳐간 '교차로에서 만난 사람'이 분명했다. 이일을 계기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때는 무조건적인 친절이나 혹은 배려 없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만이 미덕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쪽만 기우는 관계는 그 한쪽이 감당하는 총량이 늘어나 힘겨워지면 결국 파국인 셈이다. 부유함의 높이가 높아지면 다른 쪽 가난함의 깊이도 깊어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거나, 나의 삶에 침범해 들어오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나도 너도 타인의 삶은 침범해서는 안되고 나도 침범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어느새 나의 선을 넘어 침범하는 이에게 '나는 너에게 내 삶을 침범당하고 싶지 않다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며 살기로 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온화하게 맑아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라는 말이다. 만일 후자에 가까운 쪽으로 느낌이 오면 과감하게 그 사람은 피하는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든, 사제지간이든, 연인 사이든, 동료 사이든 마찬가지다. 아무튼 사람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늘 영향을 받으므로 누구를 사귀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생각 버리기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21세기 북스>




40대의 인간관계는 꽤나 복잡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사실 이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는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인정받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나의 본성을 버려가며 희생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조명이 켜진 무대 위에서 멋진 공연을 하고 내려온 뒤 캄캄한 무대 뒤편에서 후회나 자책을 할 일이 지나치게 많지는 않았는지. 당장 속상했던 내 마음보다 상대의 마음을 우선순위를 두고 헤아리려 너무 애를 쓰진 않았는지.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느라 가장 가까운 내 감정은 돌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너무 눈치만 살피고 살지는 않았었는지. 그동안 행해왔던 나의 행동들이 나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닌 상대의 기쁨을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를 충분히 되돌아보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엄마는 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힘은 뜻밖에도 엄마 자신을 비난하는 데서 오지 않았어. 비난하지 않고 과거의 어리석고 못나고 나쁘고 꼴도 보기 싫은 나 자신을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는데서 그 힘은 왔단다. 화해와 용서를 원했지만 그건 기실, 과거에 나를 상처 입게 내버려 둔 나 자신과의 화해였고, 용서를 한건 그런 나 자신을 용서한 거란다.

<네가 어떤 삶을 살던지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공지영/오픈하우스>


10대 20대 30대 40대를 꾸준히 거쳐오며 10년을 주기로 경험에 따른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과 수와 마음가짐이 달라져 가 것을 느낀다. 어찌 되었건 20대의 인간관계와 40대의 인간관계의 깊이는 많이 다르다는 것. 가야 할 건 가야 할 시기에 분명 가야 하지만 또 한편 와야 할 것들도 분명히 올 것이라는 것. 그렇기에 늘 스스로에게 '서두르지 말자'라고 되뇐다. 난로와 같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너무 성급하게 다가가면 안 된다는 것. 비록 그 끝을 알 수는 없겠지만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임을 마음 속 깊이 새겨본다. 문득 미르자 갈리브의 시가 생각이 났다.


새들은 허공에 날아가게 하라.

너의 새는 돌아올 것이니.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갈등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그동안 나는 얼마나 애를 썼었는가. 그것이 과연 나의 몫이었을까. 그 상황에서 굳이 내가 그 역할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이제는 타인보다 나를 챙기며 돌봐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의미한 관계에서까지 친절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내 자아를 숨기며 희생하면서까지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도록 스스로의 기준을 다시금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행여 인색해지지 않도록 베풀되 자비심 넘치는 모습의 상(像)은 지워버리라. 균형을 잘 맞추어 '각자의 몫'을 구분해 나가다 보면 앞으로 그 누구를 만나든 전보다 편안한 관계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나는 마흔을 목전에 둔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인간관계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과거에 일어난 일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상 손바닥 뒤집듯 쉽게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주 아픈 외로움을 느낄지라도 그 고통은 언제나 '나의 몫'으로 남겨놓고 겪어내야만 한다. 그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므로. 그 농도가 옅어지도록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며 지금을 살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속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심연에는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존재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사랑이 받고 싶다기보다 미움받는 것이 두려웠다. 천연덕스레 행동하고 늘 구김살 없는 밝은 표정으로 상대를 대했던 건 나를 나답게 마주하지 못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인정하는 중이다. 내 삶에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미움받을 용기를 내보아야겠다. 예전에 늘 자기 할 말 다하는 사람들을 미워했었지만 내가 미움받을 용기를 내고 하니 그 사람들을 마냥 미워할 필요는 없겠다 싶다.(나라는 인간은 이렇게 이기적이다.) '뭐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게 있겠나.'남들이 잘하는 건 그만큼 진심을 다해 온 노력을 기울인 대가라는 사실을  또 한번 받아들인다. 이렇듯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오늘 또 내가 새롭게 만들어낸 다른 세상 속에 용기를 내 한 발을 내딛기로 결심한다. 또다시 무너지고 깨질지언정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언젠가 네가 친구에 대해 물었을  때 엄마도 언젠가 어떤 스승에게 들은 말을 네게 해줄 수밖에 없었어. 삶은 등산과 같고 친구는 그 등산길의 동료와 같다고 말이야. 등산로 입구에서 그렇게 많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로들 가버렸는지 올라갈수록 인적은 드물어지고 그리고 외로워진다는 것을 말이야. 설사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걸을 수는 있지만 때로는 운이 좋아 정상까지 함께 갈 수도 있지만 대개는 갈림길에서 헤어지거나, 각자가 걷는 길의 속도에 따라 만나고 또 헤어지고 한다는 것을(...) 삶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서 잠시 맴돌 수는 있지만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흘러가는 것, 흘러가야 하는 것, 흐를 수밖에 없고 흐르기를 원하는 그것들을 흘러가게 내버려 둘 때, 그게 누구든 그게 설사 나 자신이라 해도 그때 삶은 비로소 자유의 빛깔을 띠게 되지. 그래. 어려운 일이야. 엄마가 무서워하는 등산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엄마도 그래. 아직도 배우고 있단다. 친구를 나누거나 잃는 이 어려운 일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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