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로서 한국의 매력
2017년 관광수지 적자가 14.7조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THAAD(사드) 여파로 한국 관광객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중국 관광객이 급감한 반면 내국인 출국자수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1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작년 관광수입은 133억여 달러로 전년보다 22.5% 감소한 반면, 관광지출은 270달러로 전년보다 111.9% 증가했다고 한다. 2001년 이후 17년째 적자이며 연간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출처 : 연합뉴스)
관광 적자 폭이 큰 것은 물론 한국인들이 그만큼 해외여행을 많이 가기 때문이다.
본인 역시 자칭 타칭 여행병 환자로서 국부 유출에 활발하게 기여하고 있는데, 외국에 나가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 고작 오천만 언저리밖에 안 되는 인구 대비 여행 중인 한국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과 중국인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인이야 인구가 15억에 달하니 당연하다손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이 동방의 작은 나라는 규모에 맞지 않게 놀라운 존재감을 자랑하는 중이다. 여행 깨나 했다는 프로 여행러들은 말한다. 세계 오지 어디를 가도 한국인이 있다고.
하지만 관광 적자가 심한 것이 한국인들의 출국 러시 때문만은 아니다. 여행지로서 대한민국이 갖는 매력이 부족하여 관광수입이 적은 것도 또 다른 이유이다.
나는 여행을 하면 항상 서점에 방문해 여행책자 코너를 둘러보곤 한다. 여행책자 코너에 어느 나라 가이드북이 꽂혀 있는지 보고 이 나라 사람들의 관심도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슬프게도, 유럽이나 미국의 서점에서는 항상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대체로 내가 방문했던 유럽이나 미국의 서점에서 여행 가이드북이 소개하는 아시아권 국가는 일본이 부동의 1위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도가 많았고 태국,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책자들도 상당했다. 한국 책자는 없거나, 있어도 종류가 몇 개 되지 않았다. 두께도 일본 책자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어쩌면 인구 1억 2천에 국가별 명목 GDP 순위 세계 3위의 일본과 인구 5천만의 GDP 순위 12위 한국을 비교하며 실망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점에 널린 인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가이드북보다 한국이 인기가 없다는 것이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걸까?
서구권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인기가 있지 않나 싶을 수도 있다.
수년째 이어지는 한류 열풍 덕분에 중국, 일본 및 동남아시아권에서 한국문화의 인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필리핀 친구가 하나 있는데 K-드라마와 K-팝에 정말 미쳐있다. 한국에서 핫하다는 드라마는 다 보고 블랙핑크의 열성 팬이다. 연예인 가십도 나보다 빨리 페이스북 뉴스 피드에서 확인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많은 아시아인들이 한국 여행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선망을 관광 수입으로 똑똑하게 연결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과 그들이 막상 방문해서 즐길 수 있는 거리가 충분한지는 별개의 이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을 좋아해 한국에 지금까지 여러 번 방문했다는 태국 인플루언서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서 한국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였는데, 그는 한국 문화와 한국을 정말 좋아하지만 여행지로서의 매력에는 아쉬운 점도 많다고 했다.
1) 여행사들이 천편일률적인 여행코스만을 제시하기에 막상 서울에 도착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하지 못하고, 2) 궁궐만 강조하는데 태국인 입장에서는 자국에 더 화려한 궁전이 많기 때문에 그게 크게 매력적이지 못하며 (중국인이 보기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3) 서울 외에 관광할 도시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도심여행, 미식 여행, 온천여행 등 콘셉트별로 관광할 수 있는 코스가 다양하고 각 지역별로 분위기가 달라 도쿄 외에도 방문할 도시가 여럿이어서 더 많이, 자주 방문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인터뷰를 보고 참 안타까웠다. 한국은, 서울은 현재 많은 중국인들이 실제로 그러고 있듯이 정말 한 번 와서 화장품 쇼핑만 캐리어 가득해가면 끝인 여행지인가? 문화재도 별 볼 일 없고 자연경관도 특출 난 것이 없는 그저 그런 나라, 도시인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서울 시민인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서울은 충분히 할 것도 많고 매력도 다양한 도시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 아쉬움을 느낄 포인트가 있다는데 동감하며, 그게 17년째 이어지는 고질적인 관광수지 적자의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서울이 매력이 부족하다면 도시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도시 마케팅 혹은 관광 기획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결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어필할만한 '매력적인 제안'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서울은 인구 천만, 근교 인구까지 합치면 인구 이천만의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메트로폴리스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명목 GDP는 세계 12위다. 돈과 사람이 몰리면 도시는 발전하고 각양각색의 비즈니스가 싹트기 마련이므로 매력이 없을 수가 없다.
관광업은 매력적인 사업이다.
직접 연계된 항공, 숙박 사업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카페 등 자영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대한민국의 수많은 자영업자 수를 생각해보라). 또한 즐거운 여행은 여행 자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여행자들의 추억에 남아 그 나라의 상품, 문화에까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게 만들기에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역직구 사업, 국위 선양과도 관련 있다.
매력은 준비되어 있다. 다만 적절하게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서울시는, 어떻게 하면 서울을 글로벌에서도 팔리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