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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Aug 07. 2018

빨리빨리의 한국인, 기다리는 유럽인

민족성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빨리빨리의 민족, 한국인?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고 시간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걸 못 견딘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는 오천만 명이 사는만큼 각양각색의 개성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한국인이 성격이 급하다라는데 동의하듯이, 확실히 국가별로 특정 상황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경향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몇 년 전, 파리에서 프라하에 가는 라이언에어 비행기를 탈 때였다. 출발 시간이 거의 다가와 비행기에 보딩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일찍 들어간 몇몇은 이미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 방송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기계적 결함'으로 인해 비행기에서 내려 안내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비행기 출발 지연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항공기 점검에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공항 트래픽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게이트가 늦게 열리거나 승객이 다 탑승했지만 이륙은 늦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보딩 중에 내리라니? 그것도 몇 명은 이미 비행기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난생처음 듣는 지시였다.

나만 황당한 게 아니었나 보다. 그 방송이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한국어로 욕이 터졌다. 그 비행기에 그렇게 한국인이 많이 있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놀라운 것은 유럽인들은 누구도 화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럽인들은 정말이지 행복하고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하하, 호호 웃으며 승무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농담을 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이십몇 년을 살아온 오리지널 한국인. 무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보딩 중에 갑자기 내리라는 지시에 이미 분개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의 불만을 알리고자 키 크고 잘생겼던 라이언에어 승무원에게 말했다.


"저기 있잖아, 지금 무슨 일이야? (심각)"

"아, 항공기에 기계적 결함이 있대. 다시 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해맑)"

"뭐? 보딩 중인데 지금? (인상 팍)"

"응...^^;;; 다시 타게 될 때 말해줄게.....(얘가 왜 화내는지 당황스럽네....^^;)"





문제의 항공기를 타고 도착한 프라하. 소문대로 아름다웠다.


한국인이 성격이 급하다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설명하기는 했으나 사실 이런 경우에는 고객으로서 불만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비행기가 언제 출발하겠다고 고객과 약속을 했으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약속을 지켜야 하고 불가피한 예외 상황들은 없애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유럽 저가 항공들이 과연 그런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렇게 보기에는 지연이 지나치게 잦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너무나 오리지널 한국인 같은가? 하하.


어쨌거나 놀라운 일은 이런 연착 상황에서도 유러피안들은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를 내기는커녕 너무나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두고두고 그 상황이 신기해서 아는 유러피안들에게 물어보니 유러피안들 왈, 그런 연착이 너무 잦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나 뭐라나..



민족성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똑같은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쌍욕을 하는데 유러피안들은 하하, 호호 여유롭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민족성이라는 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행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각 나라 사람들의 성향이랄까, 분위기 같은 것이 확실히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서는 사람들이 정말 밝고 친절했다.

날씨가 좋으니 마음이 절로 오픈 마인드가 되는 걸까? 캘리포니아는 내가 여행해본 그 어느 지역보다 긍정적이고 사교성 만렙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약 열흘 가량 여행하는 동안, 길 가다 만난 사람들에게 과장 안 하고 "I love your jacket"을 하루에 세 번씩 들었다.

머물렀던 호스텔 카운터의 여자 직원은 내 지방시 가방을 보더니 나도 이 가방을 사려고 했는데 너무너무 예쁘다며 한참을 호들갑을 떨었다.


심카드를 산 편의점의 직원은 뭔가 설정이 잘못되었는지 심카드가 내 휴대폰에서 잘 작동하지 않자 나와 10분여를 낑낑대 주었다. 하룻밤 머물렀던 산타모니카 비치의 호텔에서는 외출하고 돌아온 사이에 호텔 매니저가 장미 꽃다발을 사서 건넸다.

그 재킷, 그 가방, 많이도 들고 다녔는데 이렇게 예쁘다고 칭찬 세례가 날아오는 곳은 처음이었다. 심카드가 작동이 안 된다고 10분 내내 챙겨주는 곳도 흔치 않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꽃다발 받는 것은, 글쎄, 그걸 그새 줄 생각을 했다는 게.. 정말 깜짝 놀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긍정의 마법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자연히 캘리포니아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밖에 없다.


산타모니카 비치의 호텔 매니저가 선물한 장미 꽃다발


크로아티아도 비슷했다.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먼저 말을 걸었으며 친절했다. 날씨만큼 따사로운 나라였다.


러시아는 아주 달랐다.

실없이 웃으면 바보 취급한다는 말을 듣긴 했었는데, 정말 사람들이 웃질 않았다(호텔과 공항 직원들만 웃었다).

그런데 모스크바를 경험해보니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직 10월이었는데도 날씨도 혹독하고 길은 뭔가.. 너무 크고 넓은데 또 너무 황량하게 느껴져서 나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음식은 어찌나 맛없는지... 아름답지만 혹독한 나라였다.




앞서 이야기한 나라들은 내가 민족성에 대한 별다른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방문했던 나라들이다.

반면 평소에 스테레오 타입을 갖고 있어서 그게 맞는지, 틀린 지 확인하게 되는 케이스도 있었다.



1. 시간 약속과 질서를 잘 지키는 독일?

시간 약속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독일. 그래서 기차도 연착 따윈 안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독일에서 딱 한 번 탄 그 열차가 하필 무려 한 시간이 연착되었다. 뮌헨에서 베를린 가는 열차였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독일인 남자 왈, 십중팔구는 시간을 지키는데 이럴 때도 가끔 있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기차를 꽤나 많이 타는데 한 시간이나 연착된 적은 한 번도 없고

15분 이상 연착된 것도 손을 꼽을 정도로 밖에 없다.

한국 기차는 정해진 시간을 꽤나 잘 지킨다.


옛날에는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약속된 시간보다 상당 시간을 늦는 게 흔했고 그게 양해가 되는 문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옛말인 것 같다. 최근에는 세계 어딜 다녀도 한국만큼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을 잘 지키는 나라를 찾기가 힘들다. 몰론 일본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독일인은 질서를 잘 지킨다고 하도 세뇌(?)를 당해서 무단횡단도 안 할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더라.


하지만 시간 약속과 질서를 잘 지킨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그러니까 독일인은,

(이탈리아인에 비하면) 약속을 잘 지킨다.

내가 이탈리아 여행을 했을 때 기차를 몇 번을 탔었는데 정말 연착이 자주 됐다.

내가 이탈리아에 가기 전까지는 '연착이 자주 된다'는 말이 '내가 타는 모든 열차가 연착될 것이다'는 말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탄 모든 열차가 연착되었다.

그러니까 독일인은 '이탈리아인에 비하면'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인에 비하면 횡단보도에서) 질서를 잘 지킨다.

사실 엄연히 말해서 영국인이 횡단보도에서 질서를 안 지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영국에서 무단횡단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런던은 보행자 중심 문화에다가 차도가 대체로 다소 좁기도 해서 사람들이 정말 수시로, 아무 때나, 자기가 원할 때 길을 막 건넌다. 그럼 차들은 기다린다.


어쨌든 눈으로 보이는 질서의 측면에서 볼 때 독일인은 '영국인에 비하면' (횡단보도에서)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다.



2. 신사의 나라 영국?

사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는 것은 요즘 시대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는 것 같다. 젊은 세대가 킹스맨처럼 슈트를  쫙 빼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봐도 딱히 다른 나라에 비해 신사적이다, 라는 것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더 아이러니하다. 영국은 인도 포함 본국의 수십 배의 영토를 식민지로 거느린 제국주의 국가의 선봉이 아닌가.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어린 세대에게 영국인들이 신사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영국 영어의 탓이 큰 것 같다. 무언가 미국식 영어에 비해 젠틀하고 포멀 하게 들리는 그 영국 영어. 듣기만 해도 좋은 그 영어. 저도 참 좋아합니다.



3. 사랑의 나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로마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보다 다소 좁다. 부산 지하철과 비슷한 너비 정도 되는 것 같다.

캐리어를 들고 앉아 있는데 맞은 편의 커플이 갑자기 딥키스를 하는 것이다.

키스를 하는 거야 놀랍지 않지만 지하철에서 저러는 건 생전 처음 본터라..(그리고 아직까지 다른 곳에서 본 적도 없다)

이래서 이탈리아가 사랑과 정열의 나라라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남자들은 여자에게 잘 치근덕거린다는 스테레오 타입이 있는데, 경험한 바로는 이거야말로 진정 진실에 가까운 스테레오 타입인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보다 이탈리아에서 치근덕거리는 남자들이 많았다.

사랑의 나라 이태리, 그 스테레오 타입. 일리 있는 건가요?




대한민국은 외국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나는 앞서 언급한 외국의 나라를 나름의 기준으로 반은 진지하게, 반은 재미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눈에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친절한 나라일까? 잘 웃을까? 개성 있나? 다시 오고 싶은 나라인가?

내가 특정 나라를 두고 사람들이 밝고 친절해서 너무 좋았다고 말한 것처럼 외국인들도 한국을 그렇게 평가해줄까? 나는 그 이미지에 걸맞게 행동했나?


'어떤 나라가 좋다'라고 말할 때 그 나라가 가진 건축물, 음식 등의 관광자원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이 인생 맛집, 랜드마크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방인이 바라본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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