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 대한 태도
노브라(No-bra)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을 여성 운동의 한 방법으로 보는 관점부터 브래지어 착용은 속옷을 입는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의견 등 생각이 각양각색이다.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 얼마 전에는 한 여성 단체의 상의 탈의 시위가 큰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각자 가진 의견이 무엇이든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고 안 하고의 이슈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임은 분명해 보인다.
궁금한 점이 생긴다. 다른 사회도 그럴까? 몇 년 전 여름, 바르셀로나에서의 기억을 공유하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말하라고 한다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기억이 있다. 뜨거운 여름 바르셀로나의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누워 있던 순간이다.
여느 날처럼 태양은 뜨겁고 하늘은 푸르렀던 날이었다. 나는 스페인에서 친해진 여자애와 함께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해수욕을 하러 갔었다. 근처 마트에서 에스텔라 댐 맥주를 사들고 빠르게 비키니로 갈아 입은 뒤 모래사장에 비치 타월을 깔았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해 음악도 틀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비치 타월 위에 누워 눈을 감았다. 황홀했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스피커의 음악 소리가 적절하게 뒤섞였다. 가끔 한 모금씩 삼키는 맥주는 너무나 시원했다. 우리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꺄르르 웃었다. 너무 행복하다는 말도 했던 것 같다. 고민이라고는 오늘 저녁에 뭐 먹지가 전부인 나날이었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한참을 누워 있다 몸을 일으켰다. 오늘의 지중해를 좀 더 내 눈 한 가득 담고 싶었다. 그러다 저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금발의 큰 키, 아름다운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상반신을 완전히 탈의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한 것은 노브라라기보다는 토플리스(여성 상의 탈의)다. 브라만 안 한 게 아니라 상체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남성은 상반신 탈의에 자유로운 편이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하는 옷은 입어도 완전히 탈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초에 사람들이 헐벗고 있는 여름날의 해변이라지만 확신 건대, 한국의 해변에서는 그런 광경을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모습이 있다면 크게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을까? 온 해변의 이목이 집중되고,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어쩌면 사진이 찍혀서 SNS에 올라가거나 그 사건을 두고 토론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여름 바르셀로나 해변에서의 상반신 탈의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추정 건대 그녀는 그저 태닝을 하는데 비키니 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임팩트 또한 전혀 없었다. 물론 나처럼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은 있을 수도 있었겠으나 그쪽을 대놓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변은 그저 평화로웠다. 유럽의 해변에서 토플리스는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도 아주 없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몸은 몸일 뿐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조금 다르게 생겼는가', '어떻게 조금 다르게 보여주는가'에 대해서 세상이 참 많은 의미 부여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곤 한다.
체중이 약간 부는 것, 주는 것이 사회적 평판이나 개인의 자존감에 매우 중요한 것은 물론이요, 연예인의 경우 그것만으로도 기사거리가 된다. 대부분의 인간은 다리를 가지고 있고 인류의 절반이 가슴이 발달했는데 치마 길이라든지, 가슴 노출의 정도 같은 것이 큰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 정도를 지키는 것도 상당히 미묘해서 살짝 드러내는 것은 자신감과 매력으로 보지만 사회적으로 허락되는 정도를 지키지 못하면 비난받기도 한다. 노브라 이슈가 그렇다. 노브라를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는 이들은 그게 사회적 정도를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너무나 큰 범위이기는 하나 내가 느끼기에 유럽인들은 대체로 한국보다 노브라로 잘 다닌다. 여름철 과감한 노출도 그렇다.
여름날에 ZARA나 H&M 같은 유럽발 SPA 브랜드를 갈 때면 너무 과감한 천 쪼가리에 불과해서 '이걸 대체 누가 입나'라고 생각이 드는 옷들이 있다. 예를 들면 등 쪽을 가릴 천이 거의 없는 옷 같은 것들이 그렇다. ZARA가 디자이너의 전위적 상상력을 시현하는 오뜨 꾸뛰르 하우스는 아닐 터. 잘 팔릴 옷을 빨리빨리 만들어 전 세계에 순식간에 공급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인 브랜드 아니던가. 다 팔리니까 만든 걸 텐데 이걸 대체 누가 산단 말인가 항상 궁금해했었다. 여행을 하면서 알았다. 아, 서양인들이 입는구나..
비키니 착용에서도 차이가 난다. 며칠 전 해운대에 다녀왔다. 폭염주의보가 일상이 된 한 여름이었다. 하지만 이 날의 해변에도 비키니만 입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비키니 위에 비치웨어를 걸쳤거나 그냥 옷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다. 몸을 완전히 가리는 래시가드도 흔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젊고 '몸매가 좋다'라고 인정받는 사람들만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해운대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나 상반신 탈의를 한 남성은 대체로 젊고 날씬한 이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몸을 많이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가린다. 완벽하지 못한 몸매는 숨기고 가려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에 비해 유럽의 해변에서는 그렇게 몸을 가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 여름, 바닷가라면 몸매를 막론하고 남자는 상의를 탈의하고 여자는 비키니를 입는다. 뚱뚱하든 날씬하든, 나이가 많든 적든 마찬가지다. 유럽의 해변에서는 80대 할머니도 비키니를 입는다.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옷 입은 사람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눈에 띄는 느낌이다.
길거리, 해변에서 과감한 노출을 한 이들 모두 한국적 기준에서 몸매가 좋은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아무래도 그런 기준에서 유럽이 좀 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선망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실 사람 사는 것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또 비슷하다. 금에야 유럽에서 노브라나 해변에서의 토플리스가 크게 이슈가 되지 않지만 그 단계까지 오기까지 많은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해변에서의 토플리스가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한국 사회도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기 위해 단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또,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몸매가 아름다운 경우에만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선망 자체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한국인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코를 높인다면 미국인들은 가슴과 엉덩이 수술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름다운-글래머러스하거나 근육질인-몸매에 대한 숭배 자체는 오히려 서양문화권, 미국 문화에서 더 심하기도 하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한국과 같은 다이어트 광고들을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한 광고가 있다. 날씬한 몸매의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등장해 Beach body가 준비되었냐고 묻는 광고다. 너무 클리셰여서 놀라울 것도 없는 다이어트 광고의 정석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즉각적으로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 던 지하철에 깔린 이 광고에 대해 사람들은 욕설을 적거나, 광고 문구를 수정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수많은 패러디 광고도 양산되었다.
참 뜨거운 여름이다. 아직도 해변가에는 마지막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할까? 적당히 숨겨야 할 대상인가? 그게 예의인가? 또는 완벽한 몸만이 드러낼 가치가 있나? 우리는 beach body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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