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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Aug 19. 2018

인종차별을 당했다

역지사지에 대하여


서양 문화권에 가면 친절한 사람도 정말 많고 특별히 친절하지는 않더라도 현지인과 다를 바 없이 대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지나가면서 나에게 치나(china)라는 말을 한다든지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생각한다. 나는 중국인도 아니지만... 중국인이면 뭐 어쩌라는 것인지, 뭐가 어쨌다고 그걸 굳이 말하고 가는 것인지 하고 말이다.


'니하오'하고 가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도 인종차별임에 분명한데 서양인들이 원래 인사를 잘 하긴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눈만 마주쳐도 Hi 하고 인사한다) 도무지 인사할 맥락이 아닌데도 니하오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진짜 내게 인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영어로 말을 걸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니하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동양인 비하 제스쳐.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도 있다. 캣콜링(cat calling)이다. 캣콜링은 지나가는 여성에게 남성들이 휘파람을 불거나 치근덕거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현지인 여성도 당하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부는 사람들을 지나치다 보면 내가 서양인이었다면 이보다는 덜 당했을 것이라는 느낌이 온다. 작은 동양인 여자여서 더 만만한 것이다.


이런 사례도 있었다.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 피사에서 버스를 탔던 때의 일이다. 물론 중국인들이 잘못하긴 했다. 버스를 내리고 탈 때는 내리는 사람이 먼저 내리고 타는 사람은 그다음에 타는 게 전 세계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중국에서는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인 한 무리가 아직 사람들이 내리지도 못한 버스로 우르르 밀고 올라왔다. 당연히 내려야 하는 사람들이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나도 짜증이 났다. 그때 버스에 있던 한 서양인 여자가 목청껏 외쳤다. "당신들은 규칙을 지켜야 해! 중국인 너네들은 ANIMAL이야!!"


물론 중국인들이 잘못한 게 맞고 나도 그에 대해서 정말 짜증이 났다. 마음속으로 쟤들 또 저런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면전에 두고 국가를 싸잡아서 너네들은 동물이라고 크게 소리치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일까?

그 여자가 조용히 규칙을 지키고 있던 나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했을지 뭐라고 생각했을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대체로 동양인을 보고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 여자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중국인은 동물'이라는 말을 듣고 나까지 기분이 나빴다.




우리는 모두 인종차별을 싫어한다

이렇게 보통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당하면 분노한다. 유럽 여행 커뮤니티에 가면 수많은 인종 차별 사례와 이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에 찬 후기를 읽을 수 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차별을 당하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쁜 일이며 특히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인종이나 성별 같은-로 차별당했을 때 불쾌함은 배가 된다. 그래서 나도 인종차별을 당하면 분노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렇게 유럽에서, 미국에서 인종 차별을 당해본 사람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인종 차별을 하지 않게 될까? 인종, 국적 때문에 차별당하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쁘고 부당한 일인지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는 이런 차별을 하지 않게 될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대한민국과 인종차별

나는 사실 내가 인종차별을 당할 때, 물론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까지 기분 나쁘지는 않다. 기분이 나쁘려고 하다가도 조국의 현실이 떠올라 갑자기 마음이 겸허해지고 Cooling down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회를 너무 잘 알고 한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내가 경험해본 나라 중 대한민국이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것 같다.


오래전부터 다양한 국적, 인종이 섞여 살아온 나라에 비해 그런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준이 정립되지 못한 느낌이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인종 차별을 한다. 사실이다.

서양인들은 좋아하고 어딘가 우월하게 본다. 동남 아시아인들은 무시한다. 때로는 같은 동북 아시아인인-외모상으로는 잘 구별도 되지 않는-중국인과 일본인도 짱개와 쪽바리라고 부르며 무시하기도 한다.


예전에 학교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온 적이 있다. 동남아시아 출신 유학생이 올린 글이었다. 이태원의 유명한 라운지 바에서 그 학생과 그의 친구들이 동남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너무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고 놀라기보다는 충분히 서울 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작년 내국인 출국자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해외여행을 가는 인구가 최고치를 경신한다는 기사가 뜬다. 이번 명절에도 그럴 것이다. 점점 더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인종 차별을 당한 경험도 날이 갈수록 축적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인종 차별을 하는 걸까?


만약 우리가 서양인이었으면 세계 어디를 가든지 간에 차별당할 일이 없어서 이 기분을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동양인으로서 우리는 서양문화권에 여행을 가거나, 유학, 이민을 가면 너무나 쉽게 소수자의 위치에 직면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게 기분 나쁘고 부당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차별하는 걸까?


한국에 훌륭한 속담이 있다. 역지사지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한국인으로서, 동양인으로서 차별받는 것은 매우 기분 나쁘다. 그럼 우리는 역지사지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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