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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Sep 26. 2018

촌스러워서 더 '힙'하다고요?

홍콩에서 느끼는 매력의 조건


아시아의 원조 국제 도시, 홍콩

홍콩은 정말 인터내셔널 한 도시다. 아시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이태원 란콰이퐁 거리의 동양인과 서양인의 비율은 정량적으로 정말 1:1에 가깝다. 동서양이 완벽히 섞였다. 놀라운 비율이다.


가게에 들어가면 금발의 여성들이 서빙을 하고 펍 앞에서는 흑인들이 어서 들어오라고 호객 행위를 한다. 거리에는 머리에 터번을 두른 아랍인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한다. 지하철에서는 인생 최초로 니캅을 쓴 여성을 보았다. 히잡을 쓴 이들은 유럽에서 많이 보았는데 눈 빼고 전부 다 가린 니캅을 쓴 사람은 처음이었다.


최근에는 서울의 가게에서도 외국인 직원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이태원의 레스토랑에 가면 외국인 직원들을 흔히 볼 수 있고 당장 우리 집 아래 편의점에도 백인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하지만 비율을 보건대 홍콩이 훨씬 더 인터내셔널 한 도시인 건 확실한 듯하다.



낡고 더러워서 더 매력적인

란콰이퐁과 소호는 홍콩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번화가다. 이 거리는 주말 밤이면 거리를 매운 음악과 사람들로 온 거리가 클럽이 된다고 한다. 마침 주말을 낀 여행이었으므로 가장 뜨거운 시간의 란콰이퐁을 더 많이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늦은 밤에도 편하게 놀다가 들어갈 수 있게 아예 란콰이퐁 지역에 호텔을 잡았다.



낡고 혼잡한 낮의 란콰이퐁 & 소호 지역



란콰이퐁과 소호를 보며 낡고 촌스러운 것과 세련됨이 기가 막히게 조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란콰이퐁과 소호의 거리는 정말 좁고, 낡고, 더럽다. 도로는 자동차 한 대 또는 두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좁고 도색이 새로 되지 않은 좁고 높은 건물들은 마치 제국주의 시절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만 같다.

거리 사이로 보이는 낡은 중국어 간판들과 딤섬을 파는 김밥천국 스타일 초저가 미슐랭 레스토랑, 닭과 오리를 목까지 통째로 로스팅해 가게 앞에 걸어놓은 로컬 음식점들이 정말 '홍콩스럽다'. 이 광경을 보고 있자면 본 적도 없는 오래된 홍콩 영화들이 생각나는 듯한 기분이다.


이 지역에는 세상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라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소호 거리를 걷다 보면 그런 게 생겨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가게들이 들어차 있는 큰 지역 전체가 전반적으로 경사가 아주 심해 에스컬레이터 없이 쭉 걸어 다니기에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다. 하루 밤은 하이힐을 신고 외출을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둘러보니 대부분의 로컬 여성들은 구두를 신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반전에 끌린다

사람이든 도시든 적당한 반전이 있을 때 매력이 배가 되는 것 같다. 강하고 진중하게만 보였는데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든지, 마냥 예쁜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적이고 워커홀릭이라든지, 운동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홈메이드 파스타 장인이라든지 하는, 전형성에서 살짝 탈피한 모습에 '아, 이런 모습도 있네' 하면서 더 빠지는 것이다.


란콰이퐁의 매력은 낡고 싸고 인테리어에 신경 쓰지 않은 중국 로컬 식당들과 유럽식 세련된 펍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너무 세련된 가게들만 들어차 있었으면 뭐랄까, 청담 같았을 것 같다.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긴 하지만 지금의 모습만큼 사랑스럽지는 않은 것이다.


밤의 란콰이퐁. 도로에 가득 찬 자동차들.
란콰이퐁, 토요일, 밤 10시경.




약간 촌스러운 것이 더 힙하다

최근 서울의 떠오르는 힙플레이스는 을지로라고 한다. 낡고 낙후된 골목 사이사이로 예스러움과 젊은 감성이 공존하는 바와 카페, 레스토랑들이 하나둘씩 들어 차고 있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은 노가리 골목이다. 낡고 오래된 도심에 편의점 앞에나 있을 법한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둔 그 분위기는 뭔가 세련됨과 거리가 멀면서도 동시에 힙스럽다. 몇 년 전 여행했던 하노이의 맥주 골목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이미지 출처 : biz.chosun.com


종로 3 가도 비슷하다. 처음으로 종로 3가를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오래된 구도심의 느낌이 마치 90년대 서울로 타임슬립을 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날 나는 그 오래된 골목에서 낙지를 배 터지게 먹고 바로 옆에 위치한 익선동으로 건너가 수제 맥주를 마셨다. 익선동도 익선동만의 매력이 있다. 좁은 골목과 낮은 한옥, 그리고 들어찬 카페와 펍.. 강남대로의 쭉 뻗은 거리가 주는 느낌과 정 반대지만 굳이 찾아 찾아 방문하고 싶은 매력이 있는 동네다.


우리는 물론 정석적으로 세련된 것도 좋아한다. 청담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앞에 발레 파킹을 하고 파스타에 와인을 곁들이는 것도 좋고 반얀트리 문바에서 위스키 한 잔 기울이는 것도 좋다. 분위기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것도 멋지다. 지금처럼 선선한 날 지친 일과를 마친 저녁시간에 사랑하는 이들과 가끔은 종로3가역 앞 포장마차에서 우동에 소주를 기울이고 싶다.


가끔은,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 더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https://www.instagram.com/hey.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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