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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Sep 26. 2018

명절이니까 여행을 가겠습니다

'요즘 애'들의 명절 나기


바야흐로 명절 전 D-X일. 이쯤 되면 친구들과 항상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명절에 어디 가?"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그냥 집에 있을 거라는 친구, 친척집에 간다는 친구, 뉴욕을 간다는 친구, 방콕을 간다는 친구, 누구는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누구는 뉴델리에, 누구는 베를린에.. 난리 법석이다.


작년 추석에 여행했던 가오슝. 용호탑 근처.



명절이니까 여행을 가겠습니다

나에게도 명절은 여행 가기 좋은, 오래간만에 얻은 긴 휴일일 뿐이다. 작년 추석에는 대만 가오슝에 있었고 올 설에는 라식 수술을 해서 집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번 추석에는 시애틀에 가고 싶었는데, 예약을 미리 안 챙겼더니 항공권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싸져버려 본의 아니게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정말, 본의 아니게.’ 내가 조회했을 당시 기준으로 시애틀 국적기 이코노미석이 200만 원에 달했는데

평소 같으면 돈 조금 더 보태면 비즈니스도 탈 가격이 아닌가 말이다. 대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여행을 다니기에 항공권 가격이 이렇게나 비싸지는 것일까?


내년 설 항공권은 지금부터 사야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마침 설에는 캄보디아에서 앙코르와트를 보고 싶다는 엄마. 앱을 켜서 항공권 가격을 확인한다. 벌써부터 비싸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인천 공항 출국자수는 매년 최고 수치를 경신해왔다. 신기하다. 시대가 변하는 걸 내 눈으로 보는 것 같아서.

상당한 비율의 사람들에게 이제 명절은 그저 긴 휴일일 뿐인 듯하다. 그리고 매 명절 때마다 더, 더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출국하는 걸 보니 그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 같다.



역사의 흐름에 내가 있다는 것

내가 어릴 때는 시골 할아버지 집에 온 친척이 모였다. 할아버지 집은 농촌지역에 있었고-집 옆에 정말 논이 있었고 옆 집에서 소를 길렀다- 가장 가까운 시내까지 차로는 5분인데 걸어서는 한 시간은 걸렸다. 아빠는 7남매였기 때문에 명절이면 한옥집에 친척들이 가득 찼다. 차가 막혀 가끔은 열 시간도 넘게 걸릴 때도 있었지만 친척들 모두 그 교통 지옥을 뚫고 할아버지 집에 모였다.


우리 가족의 명절이 변화한 건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더 이상 명절에 친척들이 대규모로 모이지는 않는다. 그 대신 각자의 가족끼리 각자의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의무적으로 가야만 하는 곳이 사라지니 나 같은 철없는 '요즘 애'는 살 판이 났다. 명절 1년 전부터 다음 명절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이번엔 어디 가지 하고 꿈에 부푸는 것이다.



명절, 이름하여 갈등의 쇼케이스

명절이면 흔히 보이는 기사들이 있다. 고부갈등, 불공평한 관습으로 인한 다툼, 이혼율 상승, 대학 어디 갔냐 묻지 마세요, 곧 취직해야지? 알아서 할게요, 결혼 언제 하냐 궁금해하지 마세요, 왜 항상 시댁에 먼저 가야 하나요, 왜 여자만 일을 하죠.. 매번 똑같은 내용인데 매번 조회수 상위에 랭크되는 기사들이다.


그만큼 그것들이 한국 사회에 큰 이슈이고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명절'이라 갈등이 특별히 생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명절은 이미 존재하는 갈등을 터트리는 기폭제 같은 것이다. 1차 대전을 터지게 한 사라예보의 방아쇠처럼.


베트남 하노이 맥주 골목


의무는 잘 모르겠고 그냥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명절 관련 기사들을 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대학 진학이나 취직은 이미 해버렸고, 다음으로 결혼을 굳이 해야 하는 것일까 말이다. 나는 그냥 철없는 요즘 애라서 그냥 지금처럼 즐겁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돈도 나 쓸 만큼은 벌고 쉴 만큼 쉬고 싶을 때 쉬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일 년에 몇 번 없는 긴 휴일에 명절에 여행 간다고 크게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물론 돈 좀 그만 쓰라는 힐난 정도는 받는다) 어디 안 가고 집에 있더라도 우리 집은 딱히 명절 음식도 안 하기 때문에 일 시키는 사람도 없고 평화롭고 때 되면 자고 배고프면 일어나서 밥 먹다가 TV 보고 글이나 쓰면 되는 것이 어찌나 여유가 있던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항상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실제로 했단 말이다. 덕분에 연휴 기간에 글도 벌써 3편이나 썼다.


그러니까 의문인 것이다. 이런 생활을 포기하면서 굳이 머리 아프게 살 필요가, 내게 있습니까?


흠, 잘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어서 자기밖에 모른다던데. 그야말로 맞는 말이지 말이다. 제가 바로 그 요즘 애라서. 그리고 내 옆에 친구 얘도 걔도 다 그런 거 같은데?


보름이라 달이 밝다. 엄마가 달님에게 소원을 빌자고 한다. 무슨 소원이야.. 하면서도 나도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항상 엉망진창 재밌게 살게 해주세요.’ 궁금하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이번 명절, 행복하셨나요?



▼ 더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https://www.instagram.com/hey.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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