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처음이어서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기억에 남는 이미지들이 있다. 내게 두바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끝을 모르게 뻗어 있던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도 아니고 그 유명한 야자수 모양 해변도 아니다. 바로 우연히 탔던 전철의 여성/아동 전용칸의 모습이다.
여성 전용칸은 차량 자체는 일반 차체와 똑같았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바닥 중앙 부분을 핑크색으로 구분하고 한쪽 구역은 여성 또는 아동만 들어갈 수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신기했다. 말로만 듣던 전철 여성 전용칸이라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되어서. 그리고 '그런 걸 실제로 지킬까' 싶은데 일반 구역에 사람이 많아 비좁은데도 어떤 성인 남성도 선을 넘어 들어오지 않아 또 한 번 신기했다. 알고 보니 여성 전용칸은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남녀가 밀착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만들어진 듯하며, 남성이 여성 전용칸에 들어오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두바이에 갔다. 유럽 가는 길에 잠깐 들리는 개념으로 방문한 거라 공부를 안 해간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중동' '무슬림'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아는 것은 두바이는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UAE)의 국제 도시이며 적극적인 외국 자본 유치를 통해 사막에 빌딩을 쌓아 올린 부자 도시, 그래서 외국인이 많고 미션 임파서블 3의 배경이다, 이 정도가 전부였다.
학교에서 배워서 이슬람이라고 다 같은 이슬람이 아니며 이슬람교 안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로 종파가 갈리고 둘은 대립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가 시아파고 수니파인지는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각 나라가 어느 정도로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지, 그래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다른 지도 알지 못했다.
사실 이슬람 국가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이슬람 여성 지위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일부다처제', '히잡' '여자는 혼자 운전도 할 수 없음'으로 그야말로 여자는 꽁꽁 싸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실제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얼마 전까지 여성이 운전을 할 수가 없었으며 아직도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사회활동을 할 수가 없다. 외출 시에는 눈을 제외하고 온 몸을 가린 '니캅'을 착용해야 한다. 여성의 운전은 최근에야 그것이 허용되었다.
이렇게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만 들은 채로 두바이에 방문한 것이라 막연하게 '여기는 이슬람 국가니까 여자는 아무것도 못할 거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생각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깨졌는데 입국 심사대의 심사 직원부터 여자였기 때문이다.
경찰인지 메트로 직원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전철역을 순찰하는 사람 중에도 무슬림 여자가 있었고 국제 도시답게 전철 티켓을 사러 방문했던 티켓 오피스 직원은 흑인 여자였다. 알고 보니 아랍 에미레이트 연합에는 여성 의원, 여성 장관이 여럿 있고 현재 UN 대사도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지위가 높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편견을 가졌던 것처럼 이슬람이니까 여자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회는 아니었던 셈이다.
전철을 타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유명한 쇼핑몰, 에미레이트 몰(Mall of the Emirate)에 갔다. 그 쇼핑몰이 얼마나 거대하고 화려한가 하면 사막에 있는 도시라 자연에서 스키장을 만들 수 없으니 쇼핑몰 안에 인공 스키장을 만들어버리는 스웩을 갖출 정도이다.
에미레이트 몰에서 나는 특히 옷가게가 궁금했다. 베일로 몸을 가려야만 하는 무슬림 여성들이 사는 도시의 옷가게는 과연 어떨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여성들의 전통 복장은 베일을 이용해 몸을 가리는 형태이다. 몸을 가리는 정도에 따라 종류가 구분되는데 가장 많은 국가에서 사용되는 히잡은 머리카락만 가리는 스카프이며, 머리카락과 몸을 가리는 차도르, 눈 빼고 온 몸을 전부 가리는 니캅, 눈도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가 있다.
이렇게 몸을 가려야 하는 무슬림 국가의 쇼핑몰은 어떨까, 얼마나 다를까, 두근두근하며 에미레이트 몰을 방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다른 나라의 쇼핑몰과 전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많은 도시이기 때문일까? 정말이지 서울이나 파리나 두바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인터내셔널 한 브랜드가 다 입점해 있는 까닭에 브랜드 구색 면에서도 다를 게 없었고 서울의 ZARA에 걸린 옷이나 두바이의 ZARA에 걸린 옷이나 똑같았다. 노출이 있는 옷도 똑같이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첫 중동 방문에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바이는 외국인이 많기로 유명한 국제 도시여서 그런지 몰라도 가지고 있던 환상 또는 편견과 많이 다른 도시였다.
두바이에 다녀온 다음에 나는 내가 '아랍' '무슬림'이라는 집단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어떤 서양인들은 동양을 '아시아' '동양인' 같은 큰 덩어리로만 생각해서 같은 아시아니까 한국과 일본, 중국이 다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같은 아시아에서도 한국과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인도는 각각 다르다. 그건 아랍 국가들도 마찬가지라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두바이에 발을 딛고서야 깨달았다.
P.S.
사실 눈 빼고 온 몸을 가리는 니캅은 무슬림이 많은 유럽은 물론 잠깐 들렀던 두바이에서도 보지 못했는데
재미있게도 얼마 전에 홍콩에서 보았다. 홍콩은 참 글로벌한 도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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