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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나래 Nov 22. 2018

비빔밥 품절 논란: 왜 기내식은 중요할까

생각보다 중요한 한 끗의 마법


인천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국적기 비행기 안. 좁은 이코노미석 좌석에 몸을 기대고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공항에 늦게 도착한 탓에 내 자리는 거의 비행기 끝에 가까웠다.


앞 좌석은 이미 기내식 서빙이 시작된 듯하다. 아직 한참은 더 남은 것 같아 심심함에 좌석 앞 개인 모니터를 켠다. 재밌어 보이는 영화는 이미 다 봤고 안 본 영화들은 재미없어 보이는 것뿐이다. 내 상태는 이미 시작된 여행에 대한 기대감 반, 이 좁은 이코노미석 좌석이 너무 불편함 반이다. 빨리 밥이나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어느덧 내 기내식이 서빙될 차례가 다가온다. 그런데 분위기가 수상하다. 승무원들 사이에 뭔가 긴장감이 감도는 듯하다.

'설마..?'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어느덧 승무원이 내 옆에 다가와 너무나 죄송하다는 말투로 말을 건넨다. 준비된 비빔밥과 오믈렛 중 비빔밥이 품절되었다는 소식이다.


대한항공 이코노미석에서 제공되는 비빔밥, 이미지 출처 : 시사플러스


비빔밥 품절 논란

사실 비빔밥 품절은 내게는 별 문제도 아니었다. 오히려 별 것도 아닌 이유로 너무너무 죄송하다고 사과받는 것이 황송했을 뿐이다. 승무원은 아주 미안한 목소리로 사과하며 다음 서빙 때는 이 쪽 먼저 준비해주겠으며, 혹시 마시고 싶은 것이 있거나 추가로 라면을 드시고 싶으시면 바로 준비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기내식은 이코노미 클래스의 경우 승객 수만큼만 준비하고 여분을 특별히 두지 않는다. 그래서 서빙 순서의 마지막에 있는 승객들은 메뉴 선택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비빔밥 같은 메뉴는 국적기의 인기 메뉴여서 일찍 품절되는 일이 잦다고 들었다. 그럼 품절이 있을 때마다 승무원들은 매번 이렇게 사과해야 하는 것일까?


애초에 나는 오믈렛도 좋았기 때문에 딱히 사과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품절에 대해 짜증을 내는 승객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을 줄이려고 승무원들이 처음부터 더 과하게 사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짜증을 내는 승객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수십에서 수백만 원을 내고 탄 승객 입장에서는 두 개밖에 없는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한 개도 이용 불가라니 억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빙 순서에서 앞자리에 있는 승객이나 뒤에 있는 승객이나 항공권 구입 가격에는 차이가 없었을 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기내식 대신 도시락을 팔 수 있을까?

올해는 기내식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한 한 해였다. 모유력 항공사의 기내식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항공편 운항까지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항공편에 실을 기내식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국제선 이륙이 심하게는 열몇 시간씩 지연되고 급기야는 지연되다가 기내식 없이 출발하기도 하는 노밀(No-meal) 사태를 보며 지연 항공기 앞에서 도시락을 팔면 대박 나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기내에 태울 수 있는 기내식은 항공법의 엄격한 적용을 받는다. 아무 음식이나 기내식이 될 수는 없다.




기내식이 중요한 이유

항공 산업에서 기내식은 아주 중요해서 국제선의 경우 기내식의 퀄리티가 해당 항공사의 평판에 크게 영향을 줄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최근 주요 항공사들은 사전 주문을 통해 일반 기내식뿐만 아니라 채식, 유아식, 글루텐프리, 저지방식 등 여러 가지 특별식을 제공하고 있다. 또는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국가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춰 해당 국가의 인기식을 메뉴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외항사의 경우에도 인천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라면 종종 한식이 나오곤 한다.


나 역시 기내식이 중요해서 입맛에 맞는 기내식이나 좀 더 친절한 서비스 때문에 국적기가 외항사보다 일반적으로 좀 더 비싸더라도 더 좋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따져보면 비행기에서 먹는 많아야 두 끼의 식사가 항공사들의 평판이나 프리미엄까지 영향을 줄만큼 중요한 것일까? 가치가 다소 과대평가된 것은 아닐까? 사실 기내식이 맛있는 항공사라고 해도 이코노미석 기준으로 그냥 조금 더 맛있는 정도지 그럴싸한 코스 요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밥이 중요하다지만 우리가 평소에 매끼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끼니를 그냥 대충 때울 때도 많고 그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내가 비빔밥을 먹지 못한 그 항공편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승객은 기어코 비빔밥을 달라고 짜증을 냈다. 밥 한 끼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은데 이 좁은 기체 내에서는 생각보다 중요한 모양이다.


나는 기내식이 중요한 것이 근본적으로 '비행기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서'가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넓어서 몸 편히 뉘이고 잠이라도 청할 수 있는 비즈니스나 퍼스트면 사정이 낫겠지만 이코노미석은 대체로 너무 좁고 불편하다. 10시간 이상 이어지는 비행에서 이 좁은 기내를 화장실 갈 때를 빼고는 움직일 일도 없다. 영화를 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잠을 청하려 해도 잠이 잘 안 온다. 결국 심심해서 뭐라도 먹어야 시간이 가는 것이다.


지루한 비행에서 기내식은 생각보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때울 수 있게 해 준다. 밥 먹기 전 무엇이 나올까 하는 설렘, 먹는 동안의 재미(어쨌든 음식이 들어가는 동안에는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다), 먹고 난 뒤 밀려오는 식곤증을 빌어 잠을 청하고 나면 몇 시간은 훌쩍 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중요한 한 끗의 힘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중요한 것처럼 디테일의 중요성을 깨워주는 일화가 하나 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라면 어린 시절 전설처럼 들어보았을 이야기다. 미국의 한 회사에서 세계 최초로 안전장치가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개발하여 세상에 선보였다. 그런데 더 안전해졌으니 탑승객들이 좋아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불만을 쏟아 냈다. 엘리베이터 운행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회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을 거듭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속도를 더 올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거울을 설치했다.



회사는 엘리베이터의 문제를 '속도'가 아니라 '탑승객의 지루함'으로 재정의 했다. 그래서 탑승객의 지루함을 덜어주고자 거울을 설치했고 탑승객들은 거울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엘리베이터가 느리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의 역할도 이와 비슷하다. 좁고 움직이기 힘든 비행기 기체 내에서 대부분의 승객들은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낀다. 좌석 크기를 바꿀 수 없다면 항공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문제를 고객이 느끼는 지루함 그 자체로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영화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하고 끊임없이 기내식과 간식,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더 중요한 한 끗의 힘,

내가 서비스를 만들 때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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