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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 Jan 15. 2017

결혼은 안해도 연애는 해야 해.

한 남자와 몇 개월을 만나도 도무지 관계에 진전이 없었다. 내딴엔 제대로 해보겠다고 열심이었으나 그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였던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지만 나도 그도 서로를 견뎌내며 몇 개월이 지났다. 마침내 내가 이 모든 것들을 그만 둬야 겠다고 생각할 즈음 친구들을 만나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 농담처럼 말했다.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사랑해보려고 했는데 버티는 거였더라고. 노력하면 되는 일이 아니긴 해. 됐어. 그만두면 되지 뭐. 이러다 안되면 혼자 살거야. 혼자서 원하는대로 글쓰며 좋아하는 취미활동하며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 " 


기대한 대답은,


"하하, 너라면 괜찮을거야. 잘 살거야.”


그런데 내 친구의 대답은, 


“......그래. 하지만 난 네가 사랑받고 살았으면 좋겠어.” 


“….”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친구의 진심이 느껴져서 목 언저리가 따끔따끔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남자가 주는 사랑이라는 건 다른 사랑과는 다른- 특별한 게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취미생활이나 예술작품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영감같은 사랑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란 말이겠지. 연인사이에만 공유되는 어떤 내밀한 것들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무슨 소리야. 남자의 사랑 따위 없으면 살지도 못하는 여자처럼 보였니?" 


라며 깔깔대고 굉장히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신여성처럼 굴었을테지만, 그때의 난 뭐가 문제였던건지 일체의 사고가 멈추고 그 친구의 진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내 입을 꾹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와는 10년을 넘게 알아왔고 그간 단 한번의 연애감정을 느낀 적도 없었는데 그 때, 순간적으로 그 아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샘이 났다. 이 아이는 어떤 사랑을 하는 걸까? 이 아이가 여자친구에게 주는 사랑이란 어떤 거길래 저렇게 확신에 차 그것이 꼭 필요하다 이야기하는 걸까?


내 인생에서 남자와의 사랑이란 우정을 조금 넘어가는 그런 류의 가벼운 것들이었고 나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타인으로 인해 그러한 것들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류의 사람인지에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여태까진 그랬다. 근데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난 그 너머의 어떤 것들이 어렴풋이 보였던 모양이었다.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건가?' 라고 한다면 너무 나이브해 보일테고 그저 호기심이 일었다고 하자. 




20대 초반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나에게 엄마는 늘 말했다. 어릴때만 해도 커서 신사임당이 되겠다며 남편은 누굴 만나도 괜찮으니 자식들 잘 키우고 내조 잘하겠다 하던 애가 고등학교때 미국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고. 그 미국 영화들이 너를 이리 물들였다고. 지나치게 독립적이라고. 

그러던 엄마가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좋아 돈만 있으면 살기 괜찮으니 돈을 벌라고. 남자는 하등 필요가 없다고. 난 우리 부모님들처럼 금슬 좋은 부부를 본 적이 없는데도 엄마는 늘 다시 태어나면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 말한다. 그게 우리 자식들에 대한 어떤 종류의 '부정'처럼 느껴져서 난 늘 발끈하곤 했지만 서른 줄을 넘겨 엄마를 '여자'로서 보기 시작하자 내 나름대로 '이해하기 싫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여하튼 그런 엄마도 내게 말한다. 

결혼은 하지 않아도 좋지만, 연애는 평생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 완벽한 사람은 안되더라도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어쩐지 그 의미를 알 듯 말 듯 하여 몇 번 더 생각해보지만 뜬구름을 잡는 일처럼 이내 허망해진다. 내겐 너무 어려운 이야기이다. 물론 결혼을 한다하여 완벽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제대로 된 사람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요에 의해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가? 라는 식으로 비꼬야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 생각을 안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겐 '연애'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 


이쯤되자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문제는 내가 혼자사는가 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살면서 연애가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겨우 혼자살아야 겠다는 생각의 끝에 다다랐다 싶었는데 이젠 연애를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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