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서로간의 간극을 어림잡아 재곤 한다. 절대적인 수치가 없더라도 상대적으론 누구에게나 그 개념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정도가 아주 조밀할테고 또 누군가는 듬성듬성 아주 너그럽게 경계를 지을테지만 결단코 모두가 한 공간에 머무를 일은 없을 것이다. 친구가 있다면 누구에게나 친한 친구와 더 친한 친구의 차이는 있다는 말이다.
가령 가족은 집의 가장 안 쪽의 아늑한 방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친구는 아마 그 옆 방 쯤이 될 수도 있겠다. 방의 크기나 청결의 정도, 문의 유무, 조명의 조도 같은 세부적인 것들이야 모두에게 개인 차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 비교적 그 문들이 꼭꼭 닫혀 있는 편이다. 언젠가 방문을 한 번 열어놨더니 그들끼리 방을 나와 만나서 속삭이더니 나의 집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유난히 방의 경계가 흐려 we are the world를 몸소 실천하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어. 나는 너에게 이만큼의 개인적인 비극사들을 이야기해줬는데 어쩜 넌 그러질 못하니. 왜 넌 힘든일을 이야기 하지 않아?
물론 섭섭할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 해줄 수 밖에 없었다.
너는 네가 원하는 방으로 들어가고 싶겠지만, 내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물론 그렇다고 '넌 내가 너를 이 방에서 꺼내 저 방으로 넣어줄 때까지 입닥치고 시키는대로 굴면 돼.' 라는 투의 강압적이거나 모진 말들은 아니다.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건 더 힘든 일이라 마음 다잡고 모두를 받아들여도 모두를 거부해도 되지 않을 일이다.
그리고, 그러다, 사랑을 하게 되면, 정말 사랑하는 운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수많은 방이 있던 그 집을 홀라당 다 태워버리고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벌판에 단 둘이 서 있게 되는 게 아닐까? 나의 집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은 체 누군가의 아름다운 목선을 바라보며 정처없이 길을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평생을 건 호젓한 산책이 되겠지.
그 날이 올지 안 올지 아무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