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키 큰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들어서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나부끼는 거리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거의 십 수년만에 만남이었다. 강원도의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을 서울로 와 친해진 동창이다. 그동안 사는 게 바빠서, 외국에 다녀오느라 소식이 이어지다 끓어졌다가 십 수년만에 다시 만난 거다.
십 수년 전 친구를 만났을 때 친구는 서울 안에 처음 집을 사고는 앞 뒤가 낭떠러지인 듯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성당에 나가 신 앞에서 통곡했다고 말했다. 나도 그때는 아이 둘이 아직 어린 때에 회사에서 해고를 당해서 앞 뒤가 꽉 막힌 듯 힘들고 지친 상황이었다.
십 수년만에 다시 만나니 친구의 얼굴은 훨씬 여유로워 있었다. 전보다 훨씬 나았다. 나 또한 얼굴이 그럴 것이다. 놀라웠던 건 그 사이 친구는 이혼을 결정하고 남편과는 별거하는 상태로 몇 년을 지냈다는 거였다.
내가 혹시 그때의 어려움 때문이었냐고 묻자 친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물론 남편이 사업을 하느라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몰래 대출을 받아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그야말로 성격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냥 옛날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 나이에는 이혼하지 않고 배우자와는 잘 사는 게 평범한 삶이다. 나는 남편이랑 이혼할 결정적인 이유가 없어서 그냥 산다. 이런 게 평범한 삶일까? 내 주변의 친구들은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이혼을 한 친구가 비율상 반은 된다. 이혼을 한 친구들은 평범한 삶이 아닌가?
이런 사실 때문에 세상에는 평범한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다양한 삶이 있을 뿐이다. 공저 에세이집 ‘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에는 그런 다양한 삶이 담겨 있다.
- 이혼한 후 새로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잘 살고자 노력하는 돌싱녀
- 흙수저 출신으로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거칠게 세상에 부딪히면서도 의미 있는 생을 살고자 하는 20대 청년
-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인생 속의 깊은 사랑을 매번 발견하는 40대 아줌마
-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서 세상에 나와 평범함을 거부하고 정형화된 틀을 벗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20대 청년
- 중국에서 이주하여 지나치게 자본주의화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자 애쓰는 한국 이주 여성
- 간호사에서 암 환자가 되어 고통을 겪은 후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30대 싱글 여성
어떤 삶이 평범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평범한 게 제일 어려워’하고 생각하는 순간은 우리가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탈락하여 다시 재기하고자 애쓰는 때이다. 나는 30대 초반 결혼을 하려고 앞두던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다 하는 결혼, 나는 못하는구나.’
그러나 지금 그런 평범함은 부질없다. 결혼 안 하고도 재밌고 의미 있게 사는 사람도 많고, 결혼을 하고도 이혼을 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우리의 평범함이란 우리의 삶을 어떻게든 건강하게 살아 낼 때 다 구현되는 것이란 걸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항상 사랑이 넘치는 글을 쓰시는 브런치 스토리 벨라 리 작가님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삶을 담아내신 한송이 출판사 대표님의 뜻도 잘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세상의 기준에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힘을 건네고 있다.
* 다음 주에는 헤이란 작가님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 리뷰를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