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스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정 표현을 솔직히 하고 살 수는 없다.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으로 괴로운 일상을 보내면서도 맘대로 화를 낼 수도 없고, 이혼한 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제대로 받아낼 방법이 없고, 직장에서 억울하게 잘려도 항의하기 어렵다.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있겠지만 억울한 마음의 해소, 분노한 감정의 해갈, 받은 만큼의 복수는 힘들다.
만약 누군가 나의 해결되지 않는 분노에 함께 분노하고,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행하지 못하는 복수를 저 세상에서 행해 준다면... 내 분노와 억울함을 들어주는 귀가 있다면... 그게 악마라도 살 힘이 나지 않겠는가?
‘악마의 귀라도 빌려 드릴까요? (이하 악귀빌)’는 인간의 분노와 억울함을 들어주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다. 주인공 악마 베스탄는 이 생에서 죄 지은 숱한 인간들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는 냉혹한 능력자이다. 지옥에서 같은 일을 수행하는 숱한 악마들 위에 선 악마.
‘악귀빌’은 베스탄이 감정 따위는 없는 냉혹한 능력자에서 인간의 분노와 억울함을 듣는 귀를 가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악마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서인지 지옥의 신 앞에서도 비아냥거리는 깐족의 대마왕임에도 불구하고 베스탄은 어쩐지 처음부터 귀여운 구석이 있다. 지옥이 복잡하다며 악인들을 교화해 천국으로 보내겠다는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층간 소음에 복수하라고 기발한 복수법을 제시하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배드 파파에게 복수하라고 더 잔혹한 복수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독자는 악마 베스탄의 매력에 퐁당 빠질 수 있다. 이런 캐릭터를 창조한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악귀빌’의 장점은 이러한 전개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베스탄의 어시스턴트, 선한 여자 사람 때문에 이 소설은 단지 악마와 복수의 이야기에 멈추지 않고 커다란 사랑의 이야기가 된다. 철저하게 이 생에서의 인생을 유린당한 여자 사람 인간은 스스로 가장 많이 변화하여 악마들을 놀려 먹고 복수를 하고 베스탄을 변화시킨다. 그것도 당돌한 방법으로. 이 여자 사람 인간의 변화와 복수 때문에 소설의 후반부는 아주 흥미로워진다.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가슴속 깊은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고 사느라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산다. 너무 많이 써서 가끔 우리는 우울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러나 만약 베스탄과 같은 회개한 악마가 우리의 가슴속 부정적인 감정들을 기꺼이 들어주고 저 세상에서 대신 복수해 준다면 우리는 악마의 심리 상담소를 찾아가 기꺼이 돈을 쓰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일상을 살아 낼 힘을 낸다면 베스탄의 귀를 빌리고 싶지 않을까?
‘악귀빌’은 브런치 작가 야초툰이 직접 악마 일러스트를 그려서 더욱 매력적인 책이 되었다. 표지에 그려진 악마 베스탄 일러는 소설 속에 그려진 악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를 잘 창출하고 있다. 야초툰 작가가 인스타툰을 꾸준히 그려 1만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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