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쓰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진다. 시적 묘사형과 스토리 전개식.
나의 에세이는 ‘스토리 전개형’이다. 12월에 책으로 발간되는 ‘중년 여성의 품위 있는 알바 생활’은 처음부터 전체 흐름을 정하면서 ‘기승전결’을 따랐다. 전체가 발단, 전개, 전환, 절정/결말의 방식을 따른다. 소설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썼음에도 글이 전체적으로 스토리식 구성이 되었다.
헤이란 작가가 쓴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는 시적 묘사형에 속한다. 문장들이 아름다운 시적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깔깔대는 호탕한 소녀들의 웃음과 뭐든 그저 좋다고 꼬부랑 박수 소리, 그리고 내가 써 드린 글자를 중얼거리며 천천히 문턱을 밟는 할머니의 들릴 듯 말 듯한 낭독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글자가 손을 내미는 명랑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음식의 맛보다는 조리의 노고를 더 따지는 아빠는, 엄마가 직접 요리를 하는 모습이 고맙고 안타깝고 더 대단하다고 말했다. 엄마가 매일 국을 끓이기 위해 포기한 삶과 식탁을 차리며 기대하는 풍경, 그러면서도 매번 인생이 주는 시련을 거친 덕에 엄마의 국은 더 진하고 구수해졌다.’
정교하게 고심하고 다듬어진 문장을 에세이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오랜 기간 정서적으로 다듬고 글쓰기 훈련을 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이런 다정하고 따뜻한 문장들을 읽는 건 큰 기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치매에 걸린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이제는 이가 거의 없어져 잇몸으로 부드러운 음식만 먹을 수 있고, 이미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심지어 사위인 작가의 아버지를 기억 못 해 욕을 해대는 엄마의 엄마, 할머니.
작가는 그 할머니가 한국 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와 서울에 자리 잡으며 결혼을 하고 가부장적이고 무능력한 남편 밑에서 자녀들을 먹이고 입혀 작가의 어머니를 길러 낸 그 세월에 감사하고 있다. 작가의 할머니는 그 세대 모든 할머니들처럼 어렵고 힘들게 다음 세대, 우리의 부모 세대를 키워 냈다.
비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지만, 맨날 많이 먹으라고 권하기만 하지만, 그리고 한글을 읽지 못해 눈이 안 보여 읽어 달라고 하지만 할머니가 겪어낸 가난한 세월과 그걸 이겨낸 힘을 작가는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에세이는 서울에 사는 소시민 가족의 모습을 올망졸망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할머니에서 어머니, 엄마인 작가와 그녀의 딸까지 4세대가 이어지는 모녀 계보라니! 작가의 딸이 ‘증조할머니’에 대해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말.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
에세이는 증조할머니가 ‘어떻게 이상한지’에서 시작해 ‘왜 이상한지’까지 밝히고 있다. 작가는 딸에게 설명하기 위해 할머니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에서 그려지는 따뜻한 가족의 모습. 아버지는 작가의 엄마가 어떻게 국을 끓여도 ‘딱 적당하게 맛있다’고 말한다. 짜도 싱거워도. 가족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동시에 그들이 살고 있는 오래되고 올망졸망한 서울의 작은 동네와 이웃들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추운 겨울날 동네 입구에서 막 구운 붕어빵을 사들고 손에 들 때 느끼는 따뜻함 같은 거. 그래서 추운 날씨를 이겨낼 힘을 얻는 그런 따뜻함 말이다.
헤이란 작가는 그런 따뜻함을 아름다운 시적인 문장으로 완성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는 추운 겨울날 마음이 지쳤을 때 따뜻함을 찾고 싶다면 읽기 좋은 책이다.
* 이 책은 제가 도서관에 희망 도서로 신청해 들어간 도서관 책입니다. 다음 주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님의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를 싣습니다.